더불어민주당 ‘무더기 반란표’ 후폭풍이 거세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이탈표가 최소 31표 나오면서 민주당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장 압도적 부결을 확신했던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온다. 그간 잠잠했던 친명(친이재명)·비명(비이재명)계 갈등도 고개를 들고 있다. 비명계는 이 대표의 거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친명계는 비명계를 겨냥해 ‘배신자’라며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은 이탈표 색출에 나섰다. 당 지도부는 단일대오 재정비를 외쳤지만 이미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평가여서 장악력이 크지 않다. 결국 이 대표의 결단만이 당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2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당의 단일한 대오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표결 결과가 주는 의미를 당 지도부와 함께 깊이 살피겠다”며 “어제의 일로 당이 더 혼란이나 분열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열 재정비에 나선 셈이지만 당내에선 박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크다. 한 초선 의원은 “압도적 부결을 그렇게 확신했는데 결과를 봐라. 이건 원내 지도부가 상당한 오판을 했다는 것”이라며 “그냥 말로 단일대오를 강조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재선 의원도 “지도부가 초선 의원과만 소통이 좀 잘되는 것 같고 중진 의원들과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중진 의원들 사이에) 좀 불만이 나온다”고 말했다.
친명·비명 갈등도 이미 궤도에 오른 모양새다. 비명계는 이 대표 사퇴론을 띄우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 대표 거취 문제를 앞서 언급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한 건 틀림없다”며 “이 대표가 억울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로 당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데 책임이 있는 건 틀림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 대표 사퇴를 압박한 것이다.
그는 전날 반란표에 대해 “겉에 나온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했다.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당내 의원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친명계 인사들은 비명계에 어떤 투표를 했는지 밝히라며 압박에 나섰다. 친명계 현근택 변호사는 이날 새벽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비명계 윤영찬 의원을 겨냥해 “어떤 표결을 했는가. 당당하게 밝히고 당원과 국민들께 평가받을 생각은 없으신가”라는 게시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현 변호사는 이 대표 체제에서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임명된 대표적인 친명 인사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대표 오른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 변호를 맡고 있다. 올해 초부터 윤 의원 지역구인 성남시 중원구에 개인 사무실을 열고 지역 활동을 하고 있다.
경기 광명을 출마를 준비 중인 비례대표 양이원영 의원도 SNS에 “앞에선 동지처럼 웃고 뒤에선 검찰독재에 굴복하다니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며 “우리 당과 이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 없습니까. 자신의 성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라고 남겼다. 광명을은 비명계로 분류되는 양기대 의원 지역구다. 당 지도부 내 친명계 의원은 “당원들이 저렇게 화가 났는데 다음 공천은 제대로 받을 수는 있겠는가”라며 “지금은 함께 지켰어야 하는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친명계 재선 의원은 “이쯤 됐으면 의원들 사이에서는 누가 어떤 표를 던졌는지 다 안다”며 “본인들이 직접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은 “이 대표가 대선에서 이겼으면 자기가 가장 공이 크다고 하고 다녔을 사람들이 오늘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며 “무엇이 정의로운지는 배우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정치적 야욕에 눈이 먼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범계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탈표를 던진 의원들을 겨냥, 공개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수박 리스트’를 공유하고 있다. 수박은 친명계를 제외한 비명계 인사들을 겨냥한 멸칭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다. 리스트에는 대부분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캠프에 있던 의원들, 혹은 소신파로 알려진 의원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당헌 80조 개정에 반대했다고 알려진 의원들도 적잖게 포함됐다. 당헌 80조는 부패 혐의로 기소될 시, 당직 정지 조항으로,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를 겨냥한 ‘정치 검찰의 기소’가 예상된다며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강경파의 ‘색출’ 시도가 이어지자 자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조 친명계로 불리던 김영진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무기명 비밀투표에 대해서 하나하나 다 확인하는 과정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른 재선 의원도 통화에서 “색출에 나선다면 도리어 당이 더 분열될 것”이라며 “일단 체포동의안은 부결이 됐다. 앞으로 지도부가 국면을 잘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 분열이 현실화한 가운데 이 대표는 “이번 일이 당의 혼란과 갈등의 계기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박 리스트’가 공유되는 것에 대해서도 “당에 도움이 안 된다.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안호영 수석대변인이 고위전략회의를 마친 뒤 전했다. 회의에 동석한 조정식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전체 의원들은 모두 당을 위하고 있다”며 “이 대표와 지도부는 눈과 귀를 더 크게 열고 여러 의견을 수렴해 민주당을 위하는 의원들 마음을 더 크게 하나로 모으는 일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의 탄압을 이겨내기 위해 당 단합이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하고,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의 길로 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비명계 ‘캐스팅 보터’ 존재감… “李 스스로 물러날 기회 준 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까스로 부결되자 당내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이 대표 체제에서 비주류로 전락했지만, 결정적 순간을 맞아 ‘캐스팅 보터’로 급부상해서다. 이들은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나온 무더기 이탈표는 이 대표의 당 대표직 사퇴와 같은 정치적 결단의 기회를 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며 주류인 친명(친이재명)계를 압박하고 있다.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전날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압도적으로 부결될 것이라는 지도부의 장담과 달리 불과 10표 차로 부결되자 ‘최소 31표’에 달하는 이탈표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분주했다.
이날 기자와 통화한 비명계 인사들은 대부분 이탈표는 이 대표 체제에 대한 비토(거부)를 뜻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상 이 대표의 리더십이 뿌리째 흔들린 만큼 대표직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한 비명계 의원은 “당을 추스르기 만만찮은 상황이다. 검찰은 또 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며 “당대표가 여러 가지로 고민하지 않겠느냐”고 사퇴 필요성을 완곡하게 말했다. 다른 비명계 의원도 “이 대표 본인이 (거취 관련) 결정을 해야 할 타이밍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그는 “169명 민주당 의원 모두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면 이 대표에게 ‘큰 요구’를 할 명분이 생겼을 것”이라며 “이제 이 대표는 더욱 (당대표직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지금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 사퇴를 가정하고 새 지도체제 구축에 대한 의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한 의원은 “최고위원들이 (당대표와) 동반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중진은 “비대위는 현실성이 없고 아예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더기 이탈표의 또 다른 원인으로 비명계와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지 못한 이 대표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체로 중진급인 비명계 의원들은 대통령 선거 경선 국면에서 이 대표가 승기를 굳혀가면서 펼친 정치적 공세에 심한 모멸감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승리를 위해 당내 화합이 필요했던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원팀’을 강조했고, 당대표가 돼선 ‘단일대오’를 내세웠다. 하지만 경선 국면에서 생긴 비명계와의 간극을 끝내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 이번 표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비명계는 표결 이후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한 의원은 “적잖은 의원들이 이 대표와 개별 면담에서 ‘표결 이후 거취 결단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이 대표가 상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버티기에 나설 경우 향후 있을 체포동의안 표결 등에서 집단행동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다만 비명계 일각에서도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 대표의 사퇴만 요구해서는 당의 사분오열만 촉진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비주류의 비토 정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민주당 지도부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검찰의 추가 구속영장 청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2차, 3차 체포동의안 표결 국면이 현실화할 경우 과연 이 대표를 방어할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이다.
◆주호영 “민주당 의원 38명이나 李대표에 동조 않은 것”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반대’보다 ‘찬성’이 1표 더 많은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며 반색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공격 수위를 한껏 높이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사법 리스크를 짊어진 대표 대신 차기 총선 전 새로운 체제가 등판할 경우 선거가 예상 못 한 구도로 치러질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전날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에 대해 “민주당에서 38명이나 되는 분이 정치탄압이란 이재명 대표 주장에 동조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자성어 현애살수(懸崖撒手)를 언급하며 “절벽에 매달렸을 때는 손을 놓고 과감하게 뛰어내려야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다가는 훨씬 더 크게 다친다는 말. 이 대표가 명심해야 할 말”이라고 직격했다.
회의에서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찬성표가 139표로 반대표보다 한 표가 더 많았다”고 지적했고,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며 “억지 방탄막이 벗겨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꼬집었다.
여당 일각에서는 전날 투표 결과로 사실상 이 대표 체제가 타격을 입었지만 오히려 이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지휘하지 않을 경우 여당 입장에선 승점을 얻을 기회가 사라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CBS 라디오에 나와 “이재명 없는 민주당, 친명(친이재명)이 주도하는 민주당이 아니라 비명(비이재명)계가, 반명계가 주도하는 훨씬 확장성 있는 민주당과 총선을 치러야 된다”며 “그게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총선 전망을 묻는 말에는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이 대표 체제가 유지되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사법 리스크 등 약점이 많은 이 대표를 향해서는 공격할 대목이 많지만 도덕성과 확장성이 있는 새 인물로 교체될 경우 여당의 공격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당 한 관계자는 “당분간 야당은 이탈표 30표에 방점을 찍기보다 정체성을 더 강화하고 희생양을 찾는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다”며 “결국 변수는 야당이 다음 체포영장에 대해 보일 반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