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8명 배출했는데… 개발에 밀려 흔적 사라질 판”

울산 울주군 입암마을의 씁쓸한 3·1절

파리서 일제 침탈 폭로한 이우락
2대째 군자금 모금 손진인·후익
2월 일대 공공택지지구 지정
“지켜온 생가 등 철거위기” 탄식

백범 김구 등 잠든 효창공원도
낮은 경제성에 재탄생사업 표류
“애국 혼 추모공간 조성 활성화를”

울산 울주군 입암마을은 독립운동가 8명을 배출해 ‘독립운동가 마을’로 알려졌지만 정부의 공공주택에 밀려 사라지게 됐다.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정부는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고 국가유공자를 최고로 예우하겠다고 밝혔지만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마을은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됐다.

가산 이우락(왼쪽), 학암 이관술.

입암마을에는 가산 이우락(1875∼1951), 문암 손후익, 학암 이관술(1902∼1950) 등 8명의 독립운동가가 살았다. 이우락 선생은 입암 윗마을 주민이었다. 그는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의 주권 찬탈을 폭로하고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파리장서’에 서명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손후익 선생은 1925년 봄 입암 아랫마을로 이사왔다. 그는 무장독립군을 양성하는 군자금 모금을 위해 상하이에서 귀국해 활동하던 심산 김창숙 선생이 언양에서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자 자신의 집에서 간호했다. 이를 계기로 울산과 경남 양산, 부산 동래 지역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에 나서게 됐고, 옥고를 치렀다. 손후익 선생의 아버지인 손진인(1869∼1935), 막냇동생인 손학익(1908∼1983) 선생도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다.

손후익 선생과 담장 하나를 두고 살았던 이관술 선생은 교사 출신으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한 제자들이 일제에 연행되고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마을 주민은 4명이다. 1990년 손후익, 손학익 형제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고, 이들의 아버지 손진인 선생은 1995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1996년엔 이우락 선생이 건국포장에 추서됐다. 이관술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지만 후손 등이 뜻을 모아 설립한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는 독립유공자로 지정받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3명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자료를 발굴하고 알릴 예정이다.

입암마을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은 아직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후익 선생의 집은 선생 일가가 마을을 떠난 뒤 이웃집에서 구입해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고, 이우락 선생이 서당을 운영했던 곳은 지금 재실이 됐다. 이관술 선생의 집도 남아 있다.

하지만 입암리 일원 183만4000㎡가 지난달 25일 국토교통부 공공택지지구로 공식 지정돼 마을이 없어지게 됐다. 이곳엔 1만5000여가구가 새로 들어선다. 2025년에 착공해 2030년 준공할 계획이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자랑인 독립운동가들의 집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면 그들을 기리는 마음도 옅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입암마을 이장 이상걸(66)씨는 “우리 마을에서 독립유공자가 4명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기념비나 현판조차 없다”며 “독립운동가를 기억할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잠든 용산구 효창공원을 2024년까지 애국선열 추모공간인 ‘효창독립 100년 공원’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 경제성을 이유로 발목이 잡혀 있다. 100년 공원 조성 사업은 총면적 12만2245㎡ 규모인 효창공원을 독립운동 기념공간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재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8년 8월 국가보훈처가 독립공원화 계획을 먼저 밝혔고, 2019년 4월 서울시가 이와 연계한 100년 공원 조성 기본구상안을 발표했다. 서울시와 보훈처 등이 함께 ‘효창독립 100년 포럼’을 구성해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2020년 3월부터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았지만 지난해 12월 낮은 경제성 때문에 ‘미통과’로 결론 났다. 시민들은 “선조들의 독립을 향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경제성이라는 암초 때문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