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언어 순결주의

작고한 황현산 선생 칼럼에 국어학자 이수열 선생에 관한 것이 있다. 이수열 선생의 엄격한 우리말 규준에 관해 꼬집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 칼럼이다. 그 칼럼을 읽다가 나는 한참 웃은 적이 있다. 그 내막은 이렇다. 이수열 선생은 언론에 실린 글에서 우리말에 맞지 않은 표기를 적어 자주 여러 필자에게 보내주었다. 황현산 선생이 받은 편지에는 ‘서로가 서로에게’라는 표현에 빨간 밑줄이 짝 그어져 있었는데 ‘서로’는 부사이기 때문에 여기에 격조사가 붙을 수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칼럼에서 황현산 선생의 불평은 이러했다. “서로가 무슨 해병대인가. 한 번 부사면 영원히 부사라는 말인가.” 국립국어원의 설명을 보면 ‘서로’는 부사이지만 명사로도 사용될 수 있어 ‘서로를’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수열 선생은 자신의 책에서 부사는 부사이지 왜 명사가 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이수열 선생의 국어 사랑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말에는 우리 겨레의 특유한 예절이 들어 있는데 우리 문인들이 외국어를 경쟁하듯이 모방하면서 우리말과 우리 생각을 좀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문인들이 지면에 쓴 잘못된 표현을 보면 붉은 잉크로 수정해서 우편으로 보내주곤 했다는 것이다. 나도 그의 책을 읽다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그가 지적한 표현 상당수는 내가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랬고, “과연,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드는 사례도 많아서 그랬다.

가령, 내가 자주 쓰는 “입학식을 가졌다”나 “희망을 가졌다”는 표현을 이수열 선생은 우리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말은 사물의 직접 소유에 한정을 두었지, 영어의 ‘have’처럼 지위나 행사, 마음에까지 ‘가졌다’는 표현으로 쓰지 않았다. 윤동주의 시에서 ‘나한테 주어진 길을…’이라는 표현도 옥에 티라고 말한다. ‘주어진다’는 말을 영어와 일본어를 모방한 기형적인 표현이라고 본 것이다. 그냥 ‘내가 가야 할 길’, ‘나의 길’ 정도가 무난할 것이다.

그가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것 중에는 이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손쉽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항상 당위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언어가 생성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어, 현실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과 같은 그런 언어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