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점차 빨라지는 가운데, 자본시장 침체 여파로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도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이라는 곳간이 더 빠르게 비워질 수도 있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한 해 수익률의 변동 폭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장기 수익률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현재 진행 중인 국민연금 개혁안에 효율적 의사결정체제와 역량 있는 운용조직 마련이 필수적이며, 정치적 외풍에 휩싸일 수 있는 현 운영 조직에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례없던 자본시장 불황에 국민연금 수익률도↓
2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기금운용 수익률은 국내 주식시장(KOSPI)의 경우 연초 대비 -24.89%, 글로벌 주식시장(MSCI ACWI ex-Korea, 달러 기준)은 -17.91%로 집계됐다. 기금운용본부가 1999년 설립되고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2008년(-0.18%)과 2018년(-0.92%)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시장에서도 이번 국민연금의 유례없는 수익률 하락에 대해 국민연금 운영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평가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전년도(2021년)에 워낙 자본시장이 좋았기 때문에 그 기저효과로 지난해 실적이 더 안 좋은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실적을 공시한 해외 주요 연기금 운용 수익률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의 성과는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자평했다. 일본(GPIF) -4.8%, 캐나다(CPPI) -5.0%, 노르웨이(GPFG) -14.1%, 네덜란드(ABP) -17.6% 등 지난해 해외 주요 연기금 운용 수익률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장기 수익률이 문제”… 운용조직 등 개편해야
국민연금 기금고갈 시점이 앞당겨진 만큼 기금운용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앞서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기금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익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기금고갈 시점이 8년까지도 연장될 것으로 본다.
김영익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국민연금 수익률은 1년 단위로 따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연기금 특성상 장기 수익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 실적을 따져봐도 별로 좋지 않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연금이 설립된 1988년 이후로 따지면 수익률은 5.11%다. 10년 연평균 기준 투자 수익률로 따져볼 때, 국민연금은 2021년 기준 6.38%로, 규모가 절반 수준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의 수익률(10.8%, 2022년 3월 기준)과 비교하면 차이가 큰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해외 글로벌 연기금들보다 충분히 장기 수익률을 못 내는 체계를 지적해야 할 것 같다”며 “반복해서 나오는 얘기지만, 국민연금 전략을 설정하는 주체가 비전문가인 기금운용위원으로 되어 있고, 운영 조직도 지방에 있는 것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기금의 운용·관리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결과적으로 시장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한 방어도, 정부에 대한 독립성도 취약해지는 구조가 됐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운용전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기금운용위원은 시장의 부당한 요구 및 압력에 대응하기 어려우며, 선임 및 임기 연장 권한이 정부에 있는 전문위원은 정부 부처 차원의 정무적 판단에 대항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에 있어 운용인력들의 이탈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본사는 부산에 있지만 서울 본부를 두고 있는 한국거래소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