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前비서실장 발인날 ‘반일 몰이’ 장외투쟁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그제 서울광장 부근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규탄대회’에 참석했다. 이 대표는 연단에 올라 “윤석열정권의 치욕적 강제동원 배상안이 다시 일본에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적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전쟁 범죄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날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이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 전모씨 발인이 엄수된 날이었다. 전씨가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 대표는 공개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 것이다.

공무원 출신인 전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이던 당시 함께했던 최측근 인사로 불린다. 주변에서 “정무는 정진상, 행정은 전씨”라고 할 만큼 전씨에 대한 이 대표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지방자치단체장 시절 부하 직원으로 수행하던 일과 관련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면 도의적·정치적 책임감을 느끼고 자숙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반일 정서를 선동하는 성격의 장외 집회에 참석했다. 대여 투쟁을 통해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이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민주당 내 갈등을 희석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해영 전 민주당 의원은 어제 페이스북을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이 전 지구보다 무겁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 대표와 같은 인물이 민주당의 당대표라는 사실에 당원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씨 사망에 대한 이 대표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당이 이재명 방탄을 이어간다면 민주당은 그 명(命)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비명계 윤영찬 의원도 엊그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표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그게 인간이고 그게 사람”이라고 사실상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런 당내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 대표가 ‘반일 몰이’로 사법 리스크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7일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관련 두 번째 재판이 열린다.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 등과 관련해서도 기소된다면 한 주에 2∼3회는 법원에 나가야 한다. 대표직 수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방울 대북 불법송금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해 추가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체포동의안 부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대표는 현실을 직시하고 거취를 결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