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짜 뇌전증’ 병역면탈, 변호사·한의사까지 도왔다니

지난해 12월 군 수사관 출신의 브로커 구속을 계기로 본격 수사가 시작된 ‘뇌전증 가장 병역면탈’의 전모가 공개됐다. 어제 검찰과 병무청 합동수사팀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병역면탈사범 13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유명 래퍼와 배우, 배구선수, 의사와 의대생 등 병역면탈자 109명, 자녀 사건에 연루된 변호사와 한의사 등 공범 21명, 브로커와 공무원 등 7명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국가관이 이 정도라니 씁쓸하기만 하다.

병역면탈 수법은 교묘하면서 치밀했다. 한때 ‘간질’로 불린 뇌전증은 뇌 속 전기흐름 장애로 환자가 일시 정신을 잃거나 일부 부위 마비를 겪는 질병이다. 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로 증상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이 점을 노려 1∼2년간 허위 처방을 받고 119신고 이력을 만드는 등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짜서 허위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유명 래퍼가 실제로 출근하지 않았는데도 구청 사회복지요원으로 141일이나 근무한 것으로 조작하고 복무에 부적합한 것처럼 보이려고 지각과 조퇴, 병가를 자주 낸 것처럼 꾸몄다. 여전히 사회의 오해와 편견 속에 이중의 고통을 받는 37만명의 뇌전증 환자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병무청이 어제 수사를 계기로 후속 조치를 내놓았다. 병역면탈 통합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과거 7년간 면제자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병역면탈 조장정보 게시 감시 등을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관 임무에 포함하기로 했다. 브로커들이 포털사이트 상담 등을 내세워 면탈자를 유인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꼭 필요한 조치다. 뇌전증 판정기준을 구체화하고 정밀화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자칫 경증 뇌전증 환자들이 불이익을 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과거에도 당국이 끊임없이 단속하고 처벌해 왔다지만 병역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 허리 디스크, 어깨 탈골, 사구체신염, 뇌전증에 이어 앞으로 또 어떤 수법이 나올지 벌써 걱정이다. 다른 질환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밝힌 대로 중점관리 대상 질환을 선정해 조기 차단해야 할 것이다.

병역비리는 자기 혼자 편하겠다고 불법과 반칙으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파렴치 행위다. 부단한 단속과 엄벌을 통해 병역면탈을 했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확실한 경고를 보내야 한다. 수사팀은 병역면탈사범에 대해 엄정한 양형 선고가 이뤄지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