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발 후폭풍이 거세다. 미 월가에서는 정부의 예금 전액 보증·자금수혈 등 긴급대책에도 SVB와 유사한 퍼스트리퍼블릭 등 지역 은행의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다. 미 뉴욕 증시가 혼조세를 보였지만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증시는 2∼3% 급락했다. 어제 아시아 증시도 덩달아 요동쳤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2.56%, 3.91%나 빠졌다. 미국이 감기에 걸리자 세계가 독감에 시달리는 격이다.
이번 사태는 1년여 동안 이어진 고강도 긴축이 가상화폐와 스타트업 등 취약고리에 타격을 가해 금융 불안으로 비화하고 있는 게 핵심이다. 벤처기업 거래가 많은 SVB는 채권 투자 손실까지 겹쳐 문을 닫았고 가상화폐 전문 은행인 실버게이트·시그니처 은행도 도산했다. 한국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대내외에서 악재가 꼬리를 물면서 경제 지표가 온통 잿빛이다. 수출 부진 탓에 무역·경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빚과 116조원에 이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위험이 수두룩하다. 이런 판에 대외 충격까지 가세할 경우 진짜 위기가 현실로 닥칠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어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SVB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국내 금융 기관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규모가 크지 않아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아니다. 정부는 우선 부동산 PF와 가계대출 부실이 금융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 금융 감독에 나서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와 금 등 안전자산 쏠림 탓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급격한 자본 유출을 막는 일도 시급하다. 금융권의 외환 수급을 면밀히 점검하고 상황에 맞춰 정교한 위기 대응책도 미리 짜둬야 한다.
초고속 뱅크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SVB가 18억달러의 채권 투자 손실을 공시하자 예금자들이 앞다퉈 스마트폰으로 돈을 빼냈는데 하루 만에 인출액이 420억달러(56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런 ‘디지털 뱅크런’으로 은행이 삽시간에 망할 수 있는 만큼 대비책이 필요하다. 차제에 예금자 보호 제도도 손보기 바란다. 현재 1인당 보호 한도는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원으로 2001년 이후 23년째 같은 수준이다. 미국·유럽·영국 등 주요국의 1억3000만∼3억3000만원에 비해 너무 적다. 보호 한도를 적정 수준으로 현실화하고 대상 상품도 확대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