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상을 받은 영화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7개 부문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와 영어로 제작되지 않은 국제 영화임에도 4개 부문을 수상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관심이 높다. ‘더 웨일’도 브렌던 프레이저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시선을 모으는 중이다.
위 영화들은 이번 아카데미에서 각각 1개 부문을 수상하며 체면치레를 한 ‘아바타: 물의 길’과 ‘탑건: 매버릭’을 제외하면 국내에선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지 못했거나 극장에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영화들이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스카 수상작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정신없는 전개와 동성애 코드, 중국계 이민자의 이야기라는 것, 양쯔충이나 여우조연상을 받은 세무사 역의 제이미 리 커티스를 제외하면 유명 배우가 없다는 점, 곳곳에서 등장하는 성인 코드 등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미국에서 ‘R등급’(17세 미만 보호자 동반)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선 ‘15세 이상’을 받았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1세인 에블린은 아빠의 생일을 앞두고, 세금 문제로 세탁소를 뺏길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뜬금없이 마블 영화처럼 ‘멀티버스‘(다중 우주)가 등장하고, 남편의 몸에는 다른 자아가 깃든다. 알고 보니 기원이 어딘지도 모를 ‘조부 투파키’가 우주의 멸망을 몰고 오려 하고 자신은 그와 맞설 존재란다. 조부 투파키는 심지어 요즘 동성연애로 자신의 정신을 심란케 하는 딸의 모습이다. 거기다 알고 보니 남편은 이혼을 원하고 있다.
조부 투파키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다중 우주에 무수히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종이로 상처 내기, 코로 파리 흡입하기 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행동을 해야 한다.
대단한 건 이런 혼란을 능수능란하게, 거기에 수많은 영화의 패러디까지 더해 수습하는 각본과 연출 능력이다. 영화를 이해하려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지 않아도 종국엔 관객을 결론으로 데려다준다.
영화는 우주의 악당을 때려잡으려는 게 아니라 사실은 단절된 가족의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현실에서 가족은, 특히나 엄마와 딸은 우주 최강의 적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잠자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영화는 비범하게 일깨워준다.
에에올과 함께 이번 오스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서부 전선)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그것도 영어가 아닌 영화가 미국에서 이처럼 주목을 받은 데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화 속 “권력을 주면 괴물이 된다”, “전쟁을 끝내지 않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라는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전쟁은 멀리서 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승적 행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인간을 죽이는 살육전일 뿐이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살의를 보이던 독일군이나 프랑스군은 휴전 협정이 발효되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의 길을 간다. 누군가의 결정으로 적이 되고, 다시 적이 아니게 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 역사의 참혹한 한 페이지다. 당시 처음 등장한 전쟁 전술인 ‘참호전’은 불과 몇백 미터의 땅을 뺏기 위해 300만 병사의 목숨을 앗아갔다. 민간인을 포함해 1차 세계대전에서 약 17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제2차 대전이 발발해 또다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참혹한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영화는 심금을 울리는 대신, 전쟁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두 영화와 함께 주목을 받은 영화는 ‘더 웨일’이다. 이 영화를 통해 프레이저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더 웨일은 남자 제자와 사랑에 빠지며 아내와 딸을 버렸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절망과 맞닥뜨린, 체중 272㎏의 거구인 찰리의 마지막 며칠을 조명한다.
거구의 찰리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관한 딸의 에세이를 통해 버린 딸과 마지막 화해를 하려 하고, 스스로 삶을 구원한다. 이런 영화의 전개에 모두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감독은 종교가 말하는 구원의 허구성을 꼬집고, 비만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을 드러내 보인다. 영화 속에선 아버지의 마지막 진심이 딸에게 닿지만,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프레이저의 연기는 훌륭하다. 동성 성추행 피해와 가족과의 불화와 이혼, 영화 ‘미이라’의 성공 후 찾아온 건강 이상 등 인생의 역경을 견뎌온 프레이저가 영화 안 찰리에게 거울처럼 비친다.
에에올은 극장과 OTT 서비스 ‘웨이브’에서, 서부전선은 ‘넷플릭스’에서, 더 웨일은 극장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