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폭로는 소수 용기 있는 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런 기억 속에 1990년 보안사가 민간인 1303명을 사찰했다고 폭로한 윤석양 이병과,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투기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중단을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이 있다. 영화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당시 교사였던 전응섭씨의 고발로 전모가 드러났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세상에 알린 박창진 전 사무장도 있다. ‘공적 내부고발’로 사회 발전을 견인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과거에 비해 폭로하기 쉬운 풍토가 됐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중요해지며, 계급과 나이로 서열을 정하던 권위주의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로 진입한 데 따른 것이다. 직장 내 갑질과 같은 작은 외침에서부터 정부를 상대로 한 정책 고발까지 폭로의 양상은 진화하고 있다. 분야 불문에, 폭로 수단도 전통적인 기자회견부터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가리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비리 고발이 가능한 ‘폭로를 권하는 사회’를 맞았다.
폭로는 사회를 자정하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폭로가 지속되면 사회 혼란을 야기한다. 진실로 포장된 주장이 하루에도 수천 건씩 인터넷을 타고 확산될 수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넘칠수록 국민들은 어느 것이 맞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피로감이 가중될 수 있다. 진실 공방에 따른 사회적 분열과 비용 부담도 져야 한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가 SNS를 통해 자신의 부친을 비롯한 가족과 전씨 일가, 지인들의 각종 비리 의혹을 밝히는 폭로에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언급된 내용이 워낙 충격적인 데다 비자금 은닉 및 사용 의혹에 대해 부인과 침묵으로 일관해온 전 전 대통령 일가에서 처음 나온 내부자 폭로라 더욱 흘려듣기가 그렇다. 물론 전씨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고, 전씨가 자택에서 라이브 방송 도중 직접 마약을 투약하며, 자해 소동을 벌이다 현지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해 신빙성 논란이 작지 않다. 그렇지만 전씨 일가의 과오가 너무나 크고 일말의 반성조차 없기에 그에게 ‘정신병자 프레임’을 씌우고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