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강제동원·위안부, 소멸시효 적용 안돼” 주장

현직 판사가 일본 강제동원·위안부 피해자 회복청구권의 경우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신우정 전주지법 군산지원장은 지난 15일 발행된 논문집 ‘사법’에 기고한 ‘강행규범과 시제법 - 강제징용·위안부 사안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에 대해서는 가해자인 일본 측의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국제법상 회복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 지원장은 강행규범에 대해 “국제사회의 근본가치인 국제공서를 보호·구현하기 위한 국제법상 최상위 규범”이라고 설명했다. 노예, 고문, 인도에 반하는 죄, 제노사이드(소수집단 말살) 등을 금지하듯.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겨서 안 되고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재판규범이라는 의미다. 강행규범은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포함한 거의 모든 국제재판소나 상당수 국내법원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어 신 지원장은 강제동원과 위안부 사안이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 법원에서 인정한 사실관계 등을 종합할 때 두 사안 모두 노예 금지와 인도에 반하는 죄 금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앞서 선고된 대법원 판결들을 인용해 강제동원의 경우 이송 및 배치 등의 과정이 일본 군경 등의 통제 아래 이뤄졌으며 작업 환경이나 근무 여건이 극히 열악했던 점, 숙소 주변에 철조망이 설치됐으며 휴일에도 감시가 삼엄해 자유가 거의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폭행이나 협박, 납치 등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는 식으로 위안소에 배치됐으며 상시적인 폭행과 협박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2021년 서울중앙지법 판결로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일부 위안부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일본군에 의해 붙잡혀 살해당하거나 심각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신 지원장은 두 사안이 강행규범 위반에 해당하는 만큼, 피해자들의 회복청구권에 소멸시효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행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선 소멸시효나 공소시효 적용이 배제된다는 게 학계의 유력한 흐름인 만큼, 강제동원과 위안부 사안 역시 시효와 상관없이 책임을 가려야 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신 지원장의 주장은 최근 일부 법원이 관련 소송에서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결한 것과 상반된다.

 

앞서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이기선)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5명이 니시마츠건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취지로 최초 파기환송한 시점인 2012년 5월 24일을 기준으로, 이미 소멸시효 3년이 지났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2월 같은 법원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역시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된 강제동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신 지원장은 “비록 당시 두 강행규범이 출현하기 전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당한 피해는 당시 이미 존재하던 ‘인간 존엄성 존중’이라는 법의 일반원칙을 위반한 행동으로 인한 결과”라며 “일본 측의 국제법상 책임 및 피해 회복을 인정하는 법리가 현 국제법 체제 안에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