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2일(현지시간) 미국 중소은행 붕괴에 따른 금융 불안 속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것은 인플레이션과 은행 위기를 동시에 관리하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연준은 이달 초까지만 해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실리콘밸리은행(SVB) 등의 파산이란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시장으로부터 기준금리를 동결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래서 택한 절충안이 빅스텝과 금리 동결 사이의 절충안인 0.25%포인트 인상인 셈이다.
금리 동결이 보낼 여러 신호에 대한 우려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경우 미국 재정 당국이 은행 추가 파산 가능성을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 SVB 파산의 가장 큰 직접적인 이유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과 국채금리 하락이 지목된 터라 더욱 그렇다.
메시지는 바로 시장에서 통했다. 올해 안에 금리 인하 전환이 없을 것이라는 파월 의장의 공개 발언에 급격히 증시·채권이 얼어붙고, 은행주가 급락했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SVB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불안을 고려해 금리 인상 중단을 고려했느냐는 질문에 “회의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그런 점을 고려했다”면서도 “우리는 물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말뿐만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 불안을 고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무게를 뒀다는 뜻이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리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준의 0.25%포인트 금리 인상 결정과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을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 사이에서 줄타기한다”고 평가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면서 금융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의회 상원 세출위원회 금융소위 청문회에 출석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금융 시장 불안과 관련해 “모든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포괄적 보험과 관련해 어떤 것도 논의하거나 고려한 바가 없다”면서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한 말은 미국 금융 당국의 시장 기대와 다른 스탠스를 재차 확인한 것과 다름없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 종합지수 위탁증권(SPDR) 지역 은행 상장지수펀드(ETF)는 이날 5% 이상 하락했다. 주가 폭락으로 불안감이 고조되던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의 경우 전날 대형 은행들이 구제 조치에 나설 것이란 소식에 주가가 30% 급등했으나 이날 다시 주가가 15% 이상 하락했다. 그밖에 중소은행인 코메리카와 US 뱅크, 자이언스 뱅크, 리전스 파이낸셜 등이 모두 6~8% 하락했다.
연준과 금융 당국이 이런 강공 태세를 유지하는 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의 올해 경제와 물가 불안정이 여전히 견조하기 때문이다. 이날 연준은 경제전망요약(SEP) 자료에서 성장률 전망은 낮추고 물가상승률 전망은 끌어올렸다. 연준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4%로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