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후 113년이 지났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1879∼1910) 의사와 관련해 국가보훈처가 “하루빨리 조국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보훈처는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 의사 순국 113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행사는 안중근의사숭모회가 주관했으며 박민식 보훈처장, 김황식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 독립유공자 유족, 숭모회 회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과 더불어 제3회 ‘안중근 동양평화상’ 시상식도 개최됐다. 이 상은 안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고 미래세대로 계승하기 위해 숭모회에서 제정했다. 국·내외에서 안 의사와 관련한 학술 연구 및 선양 활동 등에 공헌한 이에게 상패와 함께 상금 2000만원을 수여한다.
올해 수상자는 사회학자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다. 숭모회는 “신 명예교수는 안 의사를 비롯한 한국 근대사, 독도 등 폭넓은 역사 분야에 대한 관심과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를 재조명하였다”며 “특히 안 의사의 교육운동에서부터 하얼빈 의거에 이르는 국권회복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 밑바탕에 평화사상이 자리해 있음을 체계적으로 논증하였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보훈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보훈부로 승격한 후 처음 열린 안 의사 추모식인 만큼 분위기가 여느 해와 달리 엄숙했다. 박 처장은 “순국 113주기를 맞아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의사님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혼을 엄숙한 마음으로 되새긴다”며 “이를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도 온전히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안 의사 유해 수습이 아직 이뤄지지 못한 현실을 거론한 박 처장은 “(유해를 찾기 위해)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주변국과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서 관련국은 중국와 일본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침 윤 대통령이 최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등 그간 꽁꽁 얼어붙었던 한·일관계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박 처장은 “안 의사 저술이나 유해 관련 자료의 발굴 등에서 일본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한말인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 의사는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했다. 귀국 후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우고 인재 양성에 힘썼다. 국권 강탈을 노린 일제의 움직임이 가속화하던 1908년 안 의사는 교육사업을 접고 의병장이 돼 함경북도 경흥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했다.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이른바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1909년 9월 일제의 고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중국 하얼빈을 방문한 것을 기회 삼아 안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이토를 사살했다. 당시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러시아어로 ‘한국 만세’)를 세 번 크게 외쳤다. 이후 부당하게 일본 측으로 신병이 넘겨져 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사형이 확정돼 이듬해인 1910년 3월26일 순국했다. 광복 이후인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