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시마다 정당 현수막이 넘쳐나고 있다. 공공기관 인근, 주요 KTX역, 지하철역, 백화점 등 시민들이 몰리는 주요 거리를 가면 정당 현수막이 네댓 개씩 걸려 있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지난 해 12월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누구나, 신고 없이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정당명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도시경관을 해친다는 우려는 차치하더라도 현수막 글귀가 상대 당을 조롱하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의 것들이 판을 쳐 문제다. 제주도 주요 거리 80곳에 내걸린 ‘4·3은 김일성의 공산 폭동’ 현수막과 부산역 광장 앞의 ‘윤석열은 이완용인가’라는 현수막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보기 민망한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 나부끼기도 한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지정된 곳이 아닌 아무데나 현수막이 내걸리다 보니 안전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인천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던 대학생이 정당 현수막의 끈에 목이 걸려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고, 경남 창원에서도 노인 부부가 어두운 길을 걸어가다 현수막에 걸려 다리를 다치는 일이 있었다. 이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현수막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폭주해 골머리를 앓는다. 문제는 마땅한 단속·철거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서울, 울산, 대전, 창원시 등은 최근 행정안전부에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한다.
정당 현수막은 애초 지자체 허가를 받아 지정된 곳에만 걸 수 있었다. 이를 어기면 해당 지자체장이 불법행위로 간주해 바로 철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김민철 의원 등 3명이 대표 발의한 현수막 설치법이 통과되면서 15일 동안 자유롭게 걸게 된 것이다. 게다가 현수막 개수 제한 규정까지 없다. 거리에서 각종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그 주변이 난장판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야가 심각성을 공감만 하고 있어선 국민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얼마 전 “정치 현수막이 국민에게 짜증과 고통을 유발하고 있다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재검토해서 현수막이 남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만큼 여야는 법개정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 표현의 자유 남용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정치혐오가 커지는 상황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