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전술핵무기를 벨라루스에 배치하기로 한 결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지난주 영국의 우크라이나 열화우라늄탄 지원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앞세운 러시아의 위협이 가중되면서 국제사회의 대립이 한층 날카로워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전날 러시아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지난주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고농축 우라늄을 함유한 전차 포탄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 이번 조치(러시아 전술핵무기의 벨라루스 배치 결정)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영국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자국 주력 탱크 챌린저2에 열화우라늄탄을 이용한 전차 포탄을 제공한다고 밝혔고, 러시아는 이 포탄에 핵 성분이 있다고 주장하며 상응 조치를 예고했다. 영국은 “열화우라늄탄은 재래식 무기에만 쓰인다”며 핵무기 연관성을 일체 부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항하기 위해 자국에 핵무기를 보유하겠다고 오랫동안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미 외교관 출신 고위 당국자는 CNN에 루카셴코 대통령이 당시 핵무기 이전 협정에 서명한 사실을 지적하며 “벨라루스가 이미 러시아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군사적 밀착은 긴밀해지고 있다. 지난 1월 양국은 연합 군사 훈련을 강화했고, 지난해 러시아는 벨라루스 영토를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배치할 전술핵무기 규모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미 공영 라디오방송 NPR은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군용기로 운반할 수 있는 탄두와 포탄을 포함해 약 2000여개의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한다”고 전했다.
전술핵무기 배치가 완료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NPR은 분석했다. 방송은 “러시아 국내 창고에 보관하던 일부 핵무기를 벨라루스 저장고로 옮기면 주둔 중인 러시아 항공기와 미사일에 더 가까워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 군축·비확산센터(VCDNP)의 니콜라이 소콜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그동안 자국 영토 밖에 핵무기를 두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으로 여겨왔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스 크리스텐슨 미국과학자연맹(FAS) 국장은 “나토를 위협하기 위해 푸틴이 벌이는 게임의 일부”일 뿐이라며 “러시아가 자국 내에 이러한 무기와 군대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벨라루스에 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아무런 군사적 효용이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