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출전한 소들은 나이가 들어 전투력이 떨어지면 비참하게 도축장으로 넘겨져 도살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멈췄던 소싸움 대회가 다시 개최되기 시작하면서 ‘전통이냐 학대냐’라는 논란이 뜨겁다. 지금까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전통이라는 명분으로 소싸움 대회를 유치해온 지자체에서도 대안을 찾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동물 학대라고 주장하는 동물보호단체와 전통을 고수하는 지자체의 인식차가 커 소싸움을 둘러싼 학대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동물권행동 단체 카라는 지난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 20일 정읍시장은 2024년도 예산 편성 전까지 소싸움 대회에 대한 대안을 찾겠다고 밝혔다”면서 “매년 소싸움을 개최한 정읍시는 지난해 2023년도 소싸움 대회 예산에 2억 8500여만원을 통과시킨 바 있어 시장의 ‘소싸움 대회 대안’ 마련 표명은 시민사회의 요구와 가치관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내린 용단”이라고 평했다.
이어 “경기 날이 다가오면 초식동물인 소에게 온갖 육식 보양식을 먹이고, 낯선 경기장에 영문도 모른 채 싸워야 하는 소들은 잦은 교상을 입는다”며 “경기에 출전한 소들은 나이가 들어 전투력이 떨어지면 비참하게 도축장으로 넘겨져 도살된다. 오로지 ‘싸움’에 이용하기 위한 모든 과정이 그야말로 동물 학대로 점철돼 있다”고 했다.
최근 논란은 4년간 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열지 않았던 대회를 다시 열기 위해 정읍시가 소싸움 대회 사업비 예산 2억8500만원을 책정하면서 거세졌다. 현재 정읍시는 소싸움 대회를 두고 대안을 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읍 녹색당은 논평을 통해 “소싸움 대회가 1996년부터 22회에 걸쳐 개최된 정읍시에서는 이제 소싸움에 대한 ‘동물 학대냐 민속놀이냐’라는 갈등은 매년 되풀이되는 핵심 의제가 됐다”며 “이는 이제 소싸움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창처럼 ‘동물학대’ 논란이 있지만 현행법상 소싸움은 동물 학대는 아니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도박·오락·유흥 등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동물 학대’라고 규정한다. 이 법에 따르면 소싸움 대회는 명백한 동물 학대에 해당하지만 이 법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지정한 11개 지방자치단체장이 주관하는 소싸움 경기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소싸움 대회를 추진하는 지자체와 사단법인 한국민속소싸움협회는 “소싸움은 전통문화유산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페인의 투우, 태국의 닭싸움, 터키의 낙타싸움처럼 우리도 전통문화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소싸움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소싸움을 시행하고 있는 지역은 전국 11개 지자체다. 경북 청도군은 상설 소싸움 경기장에서 매주 토·일요일 하루 12경기를 운영하며 경마처럼 관람객이 베팅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경남 진주시와 전북 정읍, 완주, 충북 보은, 대구 달성, 경남 창원, 김해, 함안, 창녕, 의령 등이 한 해 1~3회의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동물 학대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지자체가 소싸움 축제에 힘을 쏟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싸움 축제가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의 경기 활성화에 한몫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소싸움 축제는 경마처럼 합법적인 베팅을 할 수 있는 민속경기로 수백억 원의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 1인당 100원에서 최고 10만원까지 걸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청도에서는 총 1254차례 소싸움 경기를 통해 매출 296억원을 거뒀다. 주말 하루 평균 1650명이 방문해 청도소싸움을 관람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싸움 관람뿐만 아니라 인근 식당과 관광지 방문 등 효과도 크다.
대한민속소힘겨루기협회의 한 관계자는 “민속놀이인 소싸움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투우와 달리 승부가 난 이후엔 경기가 종료되므로 동물 학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인식변화로 스페인의 전통문화인 투우 경기를 개최되는 17개 자치단체 중 3곳은 투우를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