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약 28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저출산 수렁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더 깊게 빠지면서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간의 저출산 정책을 재평가하고, 돌봄·교육, 일·육아 균형, 주거 등 핵심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막상 내놓은 대책은 기존 정책의 수혜 대상을 늘리는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관계 부처 간 논의를 거쳐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관계 부처가 28일 합동으로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과제 및 추진방향을 보면, 정부는 기존 저출산 대책의 목표가 불명확하고, 제대로 된 성과지표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홍석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은 “기존에는 (저출산) 기본계획을 예산집행률 등으로 평가했다”며 “형식적인 평가가 아니라 정량적인 심층평가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대책별로 효과와 수요자 체감도를 고려해 주요 과제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돌봄·교육과 일·육아 병행 등 5대 핵심 분야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맞벌이 부부가 주로 이용하지만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어린이집 내 ‘0세반’ 운영을 지원하고,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해 오후 7시까지 운영되는 늘봄학교의 운영시간을 오후 8시로 늘리기로 했다, 아동의 건강과 성장 등 아동의 기본권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명시하는 ‘아동기본법’ 제정도 추진한다.
근로시간 제도 관련해서도 단순히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기만 할 게 아니라 휴직 기간의 소득대체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는 부모 1인당 최대 24개월 사용할 수 있던 근로시간 단축제를 최대 36개월까지 늘리기로 했다. 최 교수는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득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들의 소득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도 주요하게 다뤄야 하고 노동시장 정책과 양육 정책이 맞물려 진행돼야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도 “여전히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저출산 대책이 다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발상을 전환해 젊은 세대의 부담을 크게 줄여줄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부모와 아이의 건강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짐에 따라 난임 부부도 늘고 있는 것을 고려해 난임시술비 지원 대상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현재 연 3일인 난임 휴가 연 6일로 확대하기로 했다. 생후 24개월 미만 영아의 입원 시 진료비 본인부담률(5%)도 0%로 개선한다. 2세 미만 ‘이른둥이’ 등에 대해서도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의료비를 지원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