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지원법을 앞세운 미국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 미 상무부는 27일 반도체 기업 보조금 신청 절차 안내를 통해 자국 보조금을 받으려면 반도체 핵심 재료인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 생산 첫해 판매 가격 등을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한 달 전 초과이익 정보 공유보다 더 ‘깐깐한’ 심사를 예고한 것이다. 수율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의 주요 지표이자 영업기밀이다. 여기에다 공장 운영자, 엔지니어, 관리자 등 전체 직원의 유형과 급여, 마케팅 비용, 연구개발(R&D) 비용 자료까지 내도록 했다. 사실상 반도체 생산과 공장 운용·경영 전략에 대한 데이터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50조원의 보조금을 앞세운 미 정부의 요구가 국제적 금기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져보면 기업들로 하여금 대놓고 영업·기술 기밀을 미국으로 넘기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 내 투자 기업을 돈만 대는 허수아비로 전락시키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수집한 핵심 정보들을 자국 반도체 성장에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자초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미국의 첨단기술이 중국에서 군사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게 이유라고 강변하지만 믿기 힘들다. 오죽하면 미국 내에서조차 미·중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선택과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나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