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실장 전격 교체… 한미회담·G7 일정 차질 우려

김성한 “국정 부담 안돼” 사의
尹대통령 수용… 사실상 경질
후임 안보실장 조태용 내정

외교안보라인 내 ‘불협화음’ 누적
尹 순방 때마다 의전 등 실수 연발
정책 추진 ‘온건파→ 강경파’로 정비
참모 개편 단행 뒤 내각 개편도 속도
주미대사 공석… 당분간 대리 체제
野 “한미회담서 국익 지킬지 우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전격 사퇴했다.

김일범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잇따라 교체된 데 이어 ‘외교안보 컨트롤타워’까지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적잖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미국 국빈 방문·5월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나온 돌연한 사퇴여서 한·미 정상회담 준비 등에도 차질이 생길까 우려된다. 윤 대통령은 김 실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후임 안보실장으로 조태용 주미 대사를 내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 실장은 이날 오후 5시3분 본인 명의로 언론 공지를 내고 “오늘부로 국가안보실장 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1년 전 대통령님으로부터 보직을 제안받았을 때 한·미 동맹을 복원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후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며 “그런 여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앞으로 대학에 복귀한 후에도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윤 대통령과 대광초 동문이다. 지난 대선 과정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했다. 지난해 5월 취임 후 한·미 동맹 강화와 대북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최근 한·미 정상회담 관련 일정 조율 과정에서 미국측이 중요한 제안을 했는데 윤 대통령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아 무산될 뻔한 일이 뒤늦게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책성 경질 보다는 대통령실 내 외교안보 라인 정비 성격이 더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안보 정책 추진에 있어 ‘온건파’로 분류된 김 실장과 ‘강경파’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최근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며 외교안보 라인 정비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23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6시쯤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김성한 실장의 사의를 고심 끝에 수용하기로 했다”며 “윤 대통령은 후임 국가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대사를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미 대사 후임자는 신속히 선정해 미국 백악관의 아그레망(외교사절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당초 국가안보실장 교체를 검토한 바는 없었다. 그러나 김 실장이 외교와 국정 운영에 부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차례 피력해서 고심 끝에 대통령이 수용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방미를 앞둔 상황에 외교·안보 라인 공백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는 “신임 안보실장이 바로 인수인계 작업을 거칠 것으로 안다”고 했다.

 

◆尹 방미 일정 혼선 책임… 사실상 대통령실 인적쇄신 ‘신호탄’

 

윤석열 대통령의 29일 국가안보실장 전격 교체는 대통령실 인적 개편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과정에서 드러난 외교안보 라인의 실책이 배경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반적 개편 흐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을 시작으로 5월까지 비서실 전반에 대한 개편을 진행한 뒤, 내각 개편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사의를 곧바로 수용하고 조태용 주미대사를 후임으로 내정했다. 대통령실은 전날만 해도 김 실장 사퇴설과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지만, 하루 만에 김 실장 사의가 수용되는 등 절차가 마무리됐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존에 알려진 대로 윤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함께할 문화행사에 대한 미국 측 제안이 보고에서 누락됐다는 건 실책의 한 사례이고, 김 실장 사퇴는 대통령실 비서실에 대한 전체적 개편의 시작을 알리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성한 사임, 외교안보 ‘강경파’로 정비

 

윤 대통령의 방일과 강제동원 배상 해법 발표 등 일련의 행보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내 강경파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김 실장은 외교안보 정책 추진에 있어 ‘온건파’로 분류돼 왔다. 이에 따라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등 외교안보 라인 내 강경 라인과 알력 관계가 있었고, 김 실장의 사퇴는 윤 대통령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의 순방 때마다 의전, 일정 등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진 데는 외교안보 라인 내 불협화음이 작용했다고 보고, 윤 대통령이 정리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그간 누적된 문제가 내달 말 미국 국빈 방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미 행정부가 국빈 초청 행사를 요청했지만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대응이 미뤄지던 중 다른 라인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지면서 윤 대통령의 문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측이 제안한 국빈 만찬 문화 프로그램이 무산 위기에 처했던 게 문제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내 외교안보 라인 교체는 인적 쇄신의 신호탄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4월 미국 국빈 방문과 5월 일본 주요 7개국(G7) 회의 초청 참석 등 외교적으로 큰 이벤트가 이뤄지는 5월까지 대통령실 참모 개편을 단행한 뒤, 내각 개편 작업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실과 내각에서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내보내고, 취임 1주년에 맞춰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부합하는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비서실장부터 수석비서관까지 교체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정책 혼선이 거듭된 근로시간제 유연화 추진 과정과 KT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싼 불협화음 등에 있어 대통령실 비서실의 정무적 판단에 윤 대통령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후임 안보실장에 조태용 주미대사를 내정했다. 사진은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 연합뉴스

◆주미대사 공석, 외교 이벤트 차질 우려

 

다만 굵직굵직한 ‘외교 이벤트’를 앞두고 김일범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에 이어 김 실장까지 연달아 물러나면서 외교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후임 안보실장에 조태용 대사를 즉각 내정하면서 공백을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방미 실무를 총괄하는 주미대사 자리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 당분간 공석이 된 주미 한국대사는 김준구 정무공사가 대사 대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로서는 최대한 빨리 공석을 채우려고 할 것으로 보이나,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그레망 절차를 밟아 주미 한국대사를 임명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새로운 대사가 임명돼 빨리 업무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안정적인 대사 대리 체제를 선호할 것이라는 분석도 이에 힘을 싣는다.

 

일각에서는 2012년 2월 내정돼 3월 부임한 최영진 전 주미대사의 경우처럼 빠르게 아그레망 절차가 진행된 사례도 있어 미국의 협조에 전적으로 달린 일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빈 방문 시 의전을 진행할 때도 정식 대사가 있는 것이 절차상 매끄러울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새 대사가 부임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최고 수준의 예우인 국빈 방문이 빈틈없이 준비돼야 하는 상황에서 ‘잡음’이 발생한 것 자체가 미국엔 외교적 결례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김 실장의 사의 공식화에 이어 윤 대통령의 사의 수용, 후임 안보실장 내정까지 불과 1시간 만에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는 점은 대통령실 수뇌부에서 안보실장 교체 논의가 상당히 깊이 있게 진행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외교안보 라인 인사 변동에 대한 해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안보실장, 외교비서관, 의전비서관이 모두 경질됐다”며 “과연 정상회담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또 “잇단 외교 참사에도 모르쇠로 버티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경질됐다”며 “이래서야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 국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누가 외교안보 라인 경질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뭔가”라며 “국민은 대통령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지난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도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에서 조태용 주미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미·북핵 문제 정통 외교관 출신 ‘카운터파트’ 설리번과 호흡 기대

 

29일 신임 국가안보실장으로 내정된 조태용(66) 주미 한국대사는 외교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박근혜정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까지 맡으며 외교부, 청와대에서 북핵 및 대미 외교를 전담해온 외교통이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며 공직에서 물러났고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 후보로 나서 문재인정부의 대미·대일 외교를 비판했다. 이후 윤석열정부의 첫 주미대사,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 안보실장이 됐다.

 

조 대사는 서울 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외무고시 14회에 합격해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북미1과장, 북미국 심의관, 초대 북핵외교기획단장, 북미국장 등 북핵 및 대미 외교와 관련한 요직을 잇달아 거쳤다. 2005년 6자회담 당사국들이 9·19 공동성명을 채택할 당시 한국 측 차석대표를 맡았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에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북핵 외교를 총괄했다. 2014년 외교부 1차관, 2015년엔 청와대 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을 연이어 맡았다. 꼼꼼한 성격으로 일에서는 매서우나 외부적으로는 ‘신사’ 이미지가 두텁다.

 

정통 외교관 출신이지만,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2020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애초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19 남북 군사합의 등을 거치며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원직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5월 주미대사로 임명돼 1년 가까이 활동해왔다. 현 정부 인사들 중에서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의 인사들과 가장 폭넓은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하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는 2016년부터 2년간 북핵 카운터파트로 일한 인연이 있어 친분이 두텁고, 앞으로 카운터파트가 될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안보실장 공석 사태에 현직 주미대사를 소환한 것은 윤 대통령의 방미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현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한·미동맹 및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있어 김성한 전 실장을 대체할 인물이 조 대사 외에 많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대사는 1983년 북한의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이범석 당시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의 사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