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그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관련 세부규정을 공개했다. 이 규정은 북미에서 만들거나 조립된 배터리 부품 50% 이상,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에서 채굴하거나 가공한 핵심광물 40% 이상을 사용하면 각각 3750달러씩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게 핵심이다. 논란을 빚어온 배터리 부품 기준에 양극재·음극재가 포함됐다. 이로써 한국에서 생산한 양극재·음극재를 미국으로 수출해 가공해도 보조금 대상에 포함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현 공정을 바꾸지 않아도 혜택을 볼 수 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부와 업계는 “우리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 “한·미 배터리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때가 아니다. IRA에 따르면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광물은 2025년부터 ‘외국 우려 단체’에서 조달해서는 안 된다. 국내업체들은 중국에서 대부분 배터리 핵심광물을 들여오는데 2년 후 수입이 금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핵심원자재인 망간은 중국 의존도가 99%에 달하고 흑연, 수산화 리튬, 코발트도 80%를 웃돈다. 4년 뒤에는 미국이 요구하는 핵심광물의 미국·FTA 국가 비중이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전기차도 ‘북미 최종조립’ 요건이 그대로여서 국내에서 생산된 현대차·기아차는 리스 등 상업용을 빼곤 보조금 대상에 빠진다. 얼마 전 공개된 반도체지원법 보조금 세부지침에도 독소조항이 여전하다. 주력산업인 자동차의 대미수출과 반도체의 대중수출 여건은 갈수록 나빠질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수출은 6개월째 쪼그라들고 무역수지는 25년 만에 13개월째 적자를 이어가는 판이다. 올 1분기 무역적자는 126억5000만달러로 작년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자국 우선주의도 기승을 부릴 게 틀림없다.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으로서는 큰 위기인데 민관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통상전략과 산업정책이 필요한 때다. 우선 대중의존도가 높은 배터리와 반도체 등의 핵심광물 공급망을 호주와 캐나다, 칠레,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하는 게 급선무다. 수출도 탈중국이 발등의 불이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수출의 40%,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러니 중국 경기둔화에 수출이 와르르 무너진다. 수출시장을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중동 등으로 다변화하는 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