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는 자신의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우리 사회가 외로워지고 원자화한 이유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지목했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초연결사회에서 타인과 비대면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만, 대면 접촉의 기회가 줄면서 오히려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지적인 셈이다. 초연결 사회의 역설인 새로운 ‘단절’의 시작이다.
2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외로움 관련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온라인 소통보다 오프라인 만남을 원한다는 응답(20대 58.8%, 30대 60.8%, 40대 63.2%, 50대 66.0%)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온라인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초연결사회라고 해도 정서적인 교류 측면에서는 ‘온라인 접촉’보다는 ‘대면 접촉’을 원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
온라인 네트워킹에 적극적일수록 외로움 체감도가 높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가 2018년 4월 발표한 ‘한국인의 외로움 인식 보고서’(전국 성인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 중 35%가 외로움을 실감한다고 답했지만, 참여하지 않는 층에서는 23%에 그쳤다. 또 외로움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무력감을 6.5배 높게 느꼈다. 뒤이어 분노(5배), 걱정(3.7배), 짜증(3.6배) 순으로 외로움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됐다.
특히 최근에는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온라인상에서 고립된 채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해소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심리학회지’에 지난달 실린 한 연구를 보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1년여간 게시된 자해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트위터 게시물은 1320개에 달했다. 트위터의 운영 방침에 따라 삭제된 게시물을 제하고도 이 정도였다.
지난 1년6개월 SNS에서 심리상담 계정을 운영한 박가람(가명·25)씨는 그동안 1만개에 육박하는 상담 요청을 받았다.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주로 학생들이었다. 그는 “죽고 싶다며 칼로 손목을 그었다든지,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하는 학생이 많았다”며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자해와 같은 폭력적 방법으로 외로움과 고독감을 표출하는 이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나 심리적 특징은 근본적으로 같다”며 “(병리적 현상을) 별종처럼 치부하면 (그들과 사회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유리 전주대 상담심리학과 석사도 “(자해 게시물을 올리는) 그들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온라인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개입할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