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는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해마다 벚꽃 명소로 몰려든다. 휴식이나 안정이 필요할 때면 푸른 숲을 찾고, 메마른 나무껍질을 비집고 나온 작은 꽃순과 새싹을 보면 황홀해한다. 인간이 이처럼 자연과 생명(Bio)체를 사랑(Philia)하는 본능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한다.
구글과 아마존 같은 첨단기술 업체 등이 사무실에 수만 그루의 나무와 식물을 식재해 거대한 식물원처럼 꾸민 것은 이런 바이오필리아를 적용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물(plant)을 인테리어(interior)에 활용하는 플랜테리아(Planterior)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친구처럼 정서적인 교감과 위안을 얻는 식물이라는 뜻의 ‘반려식물’과 식물의 집사를 자처하는 사람을 일컫는 ‘식집사’ 등의 신조어도 잇따라 등장했다.
이런 신조어는 식물이 더 이상 관상용이나 공기정화 용도에 그치지 않고, 반려동물처럼 키우면서 교감하고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존재가 됐음을 의미한다. 반려식물을 일시적으로 맡아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려식물 호텔과 식물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식물병원, 식물집중치료실, 사이버 식물병원도 생겼다.
인간이 식물을 사랑하는 것은 본능이기도 하지만, 식물이 우리에게 위안과 안정감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울증,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의 치료와 치매 예방 등에 식물을 활용하는 식물매개치료도 늘고 있다. 정부에서도 2020년 3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치유농업법)을 제정해 원예와 농업의 치유적 기능을 인정하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성인은 안정감, 어린이는 집중력 도움
식물매개치료는 미술치료, 음악치료처럼 보완대체의학으로 분류되는데 살아있는 생명을 다룬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치의 책임감이자 성취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인데 식물을 가꾸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직접 물을 주고 흙을 갈아 키운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과정에서 식물과 교감하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서적 만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다.
박 교수는 “원예활동을 할 때 뇌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를 들어 안정감 줄 때 나오는 알파파와 긴장할 때 나오는 베타파 등의 파장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했다”면서 “과거 효과평가는 설문조사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실험자의 혈액을 뽑아서 대사체의 변화, 세로토닌과 트리토판 등 주변물질의 변화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푸르고 울창한 숲, 꽃이 핀 들판을 볼 때 사람의 뇌는 안정과 휴식을 취할 때 나타나는 주파수 8∼13㎐인 알파파를 분출한다. 또 싱싱한 식물을 보면 뇌혈류가 원활해지면서 뇌세포를 활성화해 긴장과 피로가 줄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박 교수는 “성인 대상 실험에서 관엽식물을 3분간 응시하게 한 결과 우측 전전두엽 피질의 옥시세모글로질 농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식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극만으로 생리적·심리적 이완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아동의 경우 식물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국대 연구팀이 특정 질환이 없는 초등학교 4∼6학년생 23명(남 9, 여 14)을 책상에 앉힌 후 50㎝ 거리에 화분을 놓고 3분간 바라본 후 무선 뇌파를 측정했다. 박 교수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알파파가 눈에 띄게 증가한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흥분, 불안과 관련된 세타파의 효과가 나타났다”면서 “ADHD 아동의 경우 전두엽의 세타파가 보통 아이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식물 바라보기는 아이들의 세타파를 감소시켰다”고 말했다.
원예활동은 노인들의 인지기능 향상과 우울감 개선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은 치매 이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항산화, 혈액순환, 기억력 증진 등 유효성분이 풍부하면서도 인지기능에 도움이 되고 재배가 쉬운 천일홍, 로즈메리, 애플민트, 유칼립투스, 라벤더 등 16종을 키우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루 2시간씩 총 10회 진행 후 치매안심센터에서 사용하는 인지기능검사(MMSE-DS)를 실시한 결과 참여 노인들의 인지기능은 프로그램 참여 전보다 19.4% 향상됐고, 기억력과 장소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지남력은 각각 18.5%, 35.7% 높아졌다. 또, 대상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기억장애문제(SMCQ)는 40.3% 줄었고, 우울감은 68.3% 줄어 정상 범위로 회복됐다.
◆공기정화는 면적의 20%, 녹시율은 5%
식물의 이런 기능 때문에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식물원 수준은 아니어도 사무실을 녹색 식물로 가득 채우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가정에서는 어떤 식물을 얼마나 채워야 공기정화와 피로 완화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우선 잎이 화려하고 꽃이 있는 식물은 햇빛을 잘 받아야 하므로 가정에서 손쉽게 키우려면 잎만 있는 관엽식물이 관리하기 편하다. 아이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 책상에 놓는 식물도 초록색 잎이 있는 관엽수가 좋다.
박 교수는 “공기정화 측면에서는 잎을 다 뜯어서 바닥에 깔았을 때 전체 실내 면적의 20% 정도를 채울 정도면 음이온이 충분히 나온다”고 말했다.
초록색 식물은 바라보기만 해도 뇌파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이는 녹시율(시야에서 녹색이 차지하는 비율)로 계산할 수 있다. 박 교수는 “녹시율을 5%, 20%, 50%, 80%까지 넓혀 실험해 본 결과 효과가 모두 동일했다”면서 “5%만으로도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향이 나는 식물도 스트레스 완화와 안정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 허브식물 가운데 라벤더는 긴장, 스트레스, 혈압을 안정시키는 등 진정효과가 뛰어나 수면장애를 겪는 성인의 뇌 활동에 도움을 준다. 캐머마일은 소화 촉진, 피로 완화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