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된 데는 10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대출 규모뿐 아니라 자영업자 차주 중 ‘다중채무자’가 절반 이상이라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억2000만원에 달한다. 금융권 안팎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이자 상환유예 조치로 가려진 부실채권이 모습을 드러낼 경우,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분기별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대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자영업 차주 중 가계대출을 받은 금융기관 수와 개인사업자대출 상품 수의 합이 3개 이상인 다중채무자는 173만명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3분기(174만4000명)보다는 다소 줄었으나, 2021년 1분기(137만1000명)와 비교했을 땐 35만9000명 급증한 수준이다.
전체 자영업자 차주 수 대비 다중채무자 차주 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분기(56.5%) 이후 지난해 2분기(56.2%)까지 하락세를 보였으나, 3분기 56.3%, 4분기 56.4%로 반등했다. 자영업 차주 10명 중 6명꼴로 사실상 더는 추가 대출을 받기 어려운 한계 차주라는 의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의 부실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이자 납부 능력인데,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보니 해당 자영업자·업체가 부실한지, 건전하게 잘 유지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이 제대로 통해서 ‘자영업자 고객들의 이자를 유예시켜줬더니 이자 부담에서 벗어나 영업을 잘했다’라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저희도 참 좋겠지만, 뇌관이 될 수도 있어서 염려스럽긴 하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 대출 부실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취약차주의 채무 재조정 등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 실린 ‘자영업자 대출의 부실위험규모 추정 및 시사점’을 통해 “자영업자 대출 부실위험 축소를 위해서는 취약차주의 채무 재조정을 촉진하고 정상차주에 대한 금융지원조치의 단계적 종료, 만기 일시상환 대출의 분할상환 대출 전환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아울러 한은은 금융기관들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확대하고, 선제적으로 자본을 확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자영업자 차주들을) 스크리닝할 수 있다면 정말 힘든 분들에게는 유예 조치를 이어가고, 회수할 수 있는 대출은 회수해서 (정부 지원이) 더 힘든 분들한테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적 기술이 발휘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