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일 광주·전남 등 호남 지역을 덮친 ‘역대급’ 가뭄에 대처하기 위한 중·장기 가뭄 대책안 주요 방향을 발표했다. 기후변화 등 영향으로 근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가뭄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전임 문재인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뒤집기 위한 수순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광주·전남 지역 중장기 가뭄 대책(안)의 주요 방향’을 발표했다. 대책안은 장래 물 수요 예측값과 주요 댐의 물 공급 능력을 과거 최대 가뭄과 기후변화 영향까지 고려한 극한 가뭄으로 나눠 예상되는 생활·공업 용수 부족량을 산정한 뒤 대책을 세우는 1단계 기본대책과 2단계 비상대책으로 구성됐다.
‘1단계 기본대책’ 핵심은 영산강·섬진강 유역 댐(주암댐·수어댐·섬진강댐·평림댐·장흥댐·동북댐)별로 생활·공업 용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해 하루 45만t의 용수를 추가 확보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장흥댐과 주암댐 사이에 도수관로를 건설해 장흥댐에서 물을 광주, 목포 등 영산강 유역 6개 시·군에 공급한다는 방안이 담겼다. 하루 10만t의 용수 가운데 여유량은 이사천취수장부터 여수산단까지 45.7㎞의 도수관로를 추가 설치해 공업용수로 공급할 계획이다.
하수를 재이용해 대체 수자원을 확보하는 방안도 공개됐다. 환경부는 여수시 공공하수처리시설 내 하수 재이용수 생산 시설을 설치해 여수산단 수요처에 공업용수를 공급할 계획이다. 또 전남 고흥·광양·보성·순천에 지하수 저류댐 2곳을 개발해 추가로 물 공급원을 확보한다. 이외에도 노후화한 상수관망을 교체 및 개량하는 사업으로 2035년까지 연간 4200만t의 수돗물 누수를 막을 예정이다.
‘2단계 비상대책’으로는 댐 저수위보다 아래 수위에 있는 비상 용량(저수위와 비상방류구 사이의 용량)과 댐 바닥에서부터 비상방류구 사이의 용량인 사수를 활용하는 방안이 담겼다. 섬진강에서는 유량이 풍부한 시기에 강물을 추가 취수해 여수·광양 산단에 공급하는 방안을 지역사회와 협의해 검토할 계획이다. 상시적으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전남 섬 지역에는 해수 침투 방지, 지하수 저류댐 설치 확대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환경부는 관계 기관 협의와 국가물관리위원회 심의, 의결을 거쳐 이달 안으로 영산강·섬진강 유역 댐과 보를 재활용하는 광주·전남 지역 중·장기 가뭄 대책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본류의 16개 보를 이처럼 ‘물그릇’으로 최대한 활용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보 수위 상승으로 4대강 본·지류 수심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고 이를 통해 70개 취수·양수장과 71개 지하수 사용지에 생활·공업·농업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 문재인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순천 주암 조절지댐을 방문했을 때 “방치된 4대강 보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환경부도 지난해 7월 대통령 업무보고 당시 “4대강 보 활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한 장관이 직접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금강과 영산강 보 상시 개방·해체 정책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책과 보 처리 방안은 별개”라며 선을 그었다. 이번 대책에 담긴 ‘보 활용’은 ‘보 존치’를 전제로 하는 건 맞지만 보를 포함해 현존하는 모든 하천 시설을 가뭄 대응에 모두 동원하겠다는 취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4대강 보 처리와 관련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정부의 4대강 보 재자연화 정책이 호남권을 덮친 가뭄 피해를 더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강·영산강 5개 보 해체와 상시 개방 결정으로 영산강 1560만t(최대 수위로 보를 운영했을 때 확보 가능한 물의 양과 보 개방 후 저수량 비교) 등 총 5280만t의 물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은 지금의 가뭄 상황과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최악의 가뭄 때문에 덕흥보와 강변여과수(심층수) 등 영산강 물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는 4대강 보 해체나 개방(영산강 승촌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백경오 한경대 교수(건설환경공학)도 “보에 있는 용수를 가뭄 지역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도수관로 등을 마련해야 하는데 4대강 보에 가둬둔 물을 쓸 수 있는 만큼 도수관로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며 “광주와 전남 지역 가뭄에 4대강 보를 활용하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7시 현재 전남 지역 생활용수 저수율은 주암댐 본댐 17.6%, 주암댐 조절지댐 25.5%, 장흥댐 28.8%, 수어댐 64.7%, 평림댐 29.7%를 기록하고 있다. 농업용수 저수율은 나주·담양·광주·장성호 등 4대호 37.9%를 포함, 54.7%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