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고교생을 대상으로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좋은 음료가 개발됐다”며 음료 시음 행사를 열고 마약 성분이 포함된 음료를 나눠준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음료병에는 유명 제약사의 상호까지 버젓이 표기돼 있었고, 아무 의심 없이 음료를 마신 6명에게서 필로폰 양성반응이 나왔다. 범인들은 “구매 의사를 조사하는 데 필요하다”며 학부모 연락처를 받아 자녀의 마약 복용사실을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고 금품까지 요구했다.
클럽 등에서 술·음료에 마약을 넣는 ‘퐁당 마약’ 범죄가 학생들로 북적대는 학원가로 확산한 것도 모자라 이를 보이스 피싱범죄에 이용한 것에 학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의 절박함을 악용한 것 자체가 악질적이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어린 학생까지 위협하는 마약 생산·유통 판매 조직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법무장관과 경찰청장에게 강력한 합동단속을 지시했겠는가.
한국은 더는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인구 10만명당 연간 마약사범이 20명 이하)이 아니다. 그 지위를 2016년에 상실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1만8395명으로 전년보다 13.9% 늘었다. 마약 사범 연령대도 젊어지고 있다. 20∼30대 마약사범이 전체 검거인원의 절반을 넘은 지 오래다. 10대 마약사범은 10년 전보다 무려 13배나 늘었다. 마약 유통 수법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익숙한 젊은 층은 더 손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마약은 강한 중독성으로 2차 범죄를 유발하고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 법안으로 폐지됐던 검찰의 마약수사권이 시행령 개정으로 우여곡절 끝에 복원된 게 지난해 8월이다. 하지만 그간의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양 기관의 힘겨루기가 수사권 약화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경의 공조강화를 지시한 건 의미가 크다. 지난 2월 4대 권역 검찰청에 특별수사팀이 출범한 만큼 흔들리던 협조 체계를 다잡고 마약범죄가 근절될 때까지 수사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SNS가 마약 거래의 온상이 되지 못하도록 수사기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마약의 위해성과 경각심을 고취하는 예방교육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