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분당 ‘정자교’ 등 안전진단 부실 정황… 학계 진단 비용에 미달

분당구, 2021년 20개 교량 정밀점검… 개당 800여만원 지출
전문가 “다리마다 수천만원… 페이퍼 의존 부실진단 가능성
휘어짐 관찰됐지만, 지적 안돼… 인대 늘어난 채 방치한 것”

‘통행금지’ 수내교 곳곳 휘어져… 불정교는 구조물 튀어나와
분당구 “뒤틀림 발견 뒤 1년간 계측… 기울기 멈춰 안전 판단”
반기마다 정기·2년에 한 번 정밀안전점검… 양호·보통 등급 받아

2명의 사상자를 낸 ‘정자교’를 포함한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의 다리들이 부실 안전진단을 받은 정황이 제기됐다. 최소 수천만원의 비용을 투입해 세밀하게 진행돼야 할 정밀안전점검이 ‘싼값’에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지난 5일 교량 양쪽에 설치된 보행로 중 한쪽 보행로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며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정자교에서 소방 등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 “페이퍼에 의존했을 가능성…통상 비용보다 크게 저렴”

 

6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5월 성남시 분당구가 진행한 관내 20개 다리의 정밀점검에는 모두 1억6977만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다리마다 불과 800만원 남짓한 지출로, 교량별로 수천만원이 소요된다는 학계의 정밀점검과는 거리가 멀다.

 

원로 토목학자인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토목공학)는 “당시 정밀점검에 (관할 분당구청이) 제대로 돈을 썼는지, 어떤 방식을 활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정밀점검은 서류나 육안뿐 아니라 흙을 실은 대형 트럭을 다리 위에 놓고 이리저리 눌러주면서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계측기 센서로 측정해야 하는데 다리마다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량별로) 수백만원의 돈만 썼다면 페이퍼에 의존한 부실 진단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또 “(수내교와 불정교 등에서) 육안으로 휘어짐이 관찰됐지만 정밀점검에선 이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고, (적합한) 보강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사람 인대가 늘어난 것을 방치한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교가 안전 문제로 전면 통제되고 있다. 수내교 보행로가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모습이 보인다. 성남=최상수 기자

실제로 이날 보행로에 대한 통행금지 조처가 내려진 수내교는 다리 곳곳에서 휘어진 부분이 드러났고, 정자교 인근 불정교 역시 하단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튀어나오는 등 뒤틀린 모습이 관찰됐다.

 

이에 대해 분당구 관계자는 “불정교의 경우 뒤틀림이 발견돼 정밀점검 뒤 1년간 계측기를 달아 더 이상의 기울기가 진행되지 않아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불정교가 안전 문제로 전면 통제되고 있다. 불정교는 전날 육안 점검 중 보행로 침하 현상이 확인됐다. 성남=최상수 기자

하지만 조 교수는 “1년간 계측기를 단 것은 안전진단에선 절대 부족한 것”이라며 “교량 안전진단을 10∼20건을 동시에 진행했을 텐데 이것도 문제”라고 했다. 다만, 이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2021년의 정밀점검은 8∼12월 이뤄졌지만 통상 문서검토에 60일가량 소요되고, 한꺼번에 여러 개의 다리를 점검해 효율이 떨어졌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점검 주체는 시 산하 분당구로 외부 용역업체를 활용했다. 지난 30년간 분당신도시의 교량 점검은 이처럼 구청이 담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수내교에서 마주한 한 주민은 “지난해에도 (정기)검사를 했다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다”면서 “저렇게 뒤틀려 있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걸 믿지 않았고 민원을 제기해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일보는 2021년 정밀검사 당시 이를 수행한 업체와 방식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기 위해 분당구 관계자들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수내교 하단을 상수도관이 지나고 있다. 이 상수도관이 준공 당시 설계에 반영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시장도 “안전진단에 문제”…컨트롤타워 부재

 

분당신도시의 교량들은 6개월 만에 이뤄지는 정기안전점검과 2년에 한 차례 치러지는 정밀안전점검에서 모두 ‘양호’(B등급), ‘보통’(C등급)을 받았다. 이번에 붕괴된 정자교도 2021년 5월 정밀점검에선 C등급을 받았으나, 바닥 판 보수 등만 거쳐 B등급이 됐다. 

 

사고가 난 정자교는 길이 108m, 폭은 25m로 1993년 6월 준공됐다. 당시 설계는 삼우기술단이 맡았고, 시공은 광주고속이 했다. 삼우기술단은 사장교인 올림픽대교와 서해대교를 국내 처음으로 설계했지만 1995년 자금난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고속은 건설 부문이 금호건설로 사명을 바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뉴스1

안전진단에 관한 문제의식은 이미 성남시 내부에서도 제기된 상태다. 이날 정자교를 비롯해 수내·불정·금곡교의 4곳을 둘러본 신상진 시장은 “보행로 밑에 지지대가 없고 구조물에 대한 개선책이 없었다”면서 “(구청 측의) 보수가 이뤄지기 전 (이를 요청할) 안전진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안전진단의 개념 자체를 바꿔 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안전진단 용역업체나 설계·감리·시공사에 대해 추후 문제가 불거지면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냐는 물음에는 “추후 고민해보겠다”고 답했다. 신 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해 민선 8기를 시작한지 10개월째가 됐다.

 

경시 성남시 분당구 불정교 측면에 단차가 발생하면서 튀어나온 콘크리트 구조물. 불정교는 안전점검을 위해 전면 통제된 상태다.

앞서 성남시는 올 2월부터 2년 전과 다른 외부 용역업체에 의뢰해 정밀안전진단을 진행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2000만원 이상 사업에 경쟁입찰을 붙이는 규정에 따라 기존과 다른 새 업체가 선정된 것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2월부터 시작한 서류검토를 마치고 현장점검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자교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교량 붕괴 원인을 찾기 위해 잔해를 모아 정밀 감정할 방침이다. 교량 설계 및 시공상에 하자가 없었는지 확인하고, 그간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