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여파와 전세 사기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며 주춤했던 전세시장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전셋값이 한풀 꺾였다는 인식에서 전세를 찾는 사람이 늘었고, 지난해 말 5∼6%대까지 치솟았던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도 최근 3∼4%대로 내려가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전세 거래량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시장 전반이 위축된 상태인 데다 입주 예정 물량도 여유가 있어서 가격 반등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지난해 11월 1만건을 밑돌며 바닥을 찍은 뒤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1만3391건으로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월간 기준 가장 많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신고기간이 2주 이상 남아 있는 지난달 전세 거래량도 벌써 1만1499건으로, 현재 추세를 감안하면 전월 거래량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경기 지역의 추세도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1만4416건이었던 경기 아파트 전세 거래는 같은 해 12월 1만5125건, 올해 1월 1만5483건, 2월 1만8812건으로 매달 증가세다. 지난달 전세 거래량도 이미 1만5000건을 돌파해 최종적으로는 2만건 안팎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셋값과 달리 월세는 상대적으로 강세장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달간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액은 92만원으로 2년 전 같은 기간(85만원) 대비 8.1% 올랐다. 서울 주요 대학가의 경우 1년 새 월세가 15%가량 상승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의 운영사인 스테이션3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주요 대학가 인근 원룸 시세는 1000만원 기준 59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에는 51만7000원이었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은 주춤해졌지만, 전세시장의 회복세를 점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동산원 기준 전세수급지수는 2월 셋째 주부터 7주 연속 상승하고 있지만, 기준선(100)을 한참 밑도는 70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다. 전셋값도 하락 폭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전국·서울 기준 모두 지난해 4월 이후 한 번도 반등한 적은 없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예전보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전세시장이 회복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며 “고금리 여파로 월세 쪽으로 빠르게 몰려갔던 수요가 금리 불확실성이 다소 개선되면서 다시 전·월세 간 균형을 찾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시장의 약세가 계속되면 올 하반기에는 역전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올해 입주 예정 물량이 많고, 고금리 기조도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어 전셋값은 지금 수준을 지키는 정도가 불가피하다”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제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갈등을 빚는 사례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