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영화나 해외 뉴스에서나 봤던 마약의 일상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 국내에서도 우리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 국내 마약사범은 수년간 연평균 1만명을 훌쩍 넘어 이제 연 2만명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마약에 대한 접근 장벽이 크게 낮아지면서 유통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다양한 범죄에 활용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올해 마약사범은 역대 최대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1만 6153명이던 마약사범은 2021년 1만8395명으로 늘어났고, 지난 1∼2월에만 2600명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2.4% 증가했다. 마약류 압수량도 2018년 414.6㎏에서 2021년 804.5㎏으로 약 두 배로 급증했다.
최근 알려진 강력 범죄에서 마약이 수단이 된 사례는 적지 않다.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일어난 소위 ‘마약음료’ 사건은 학부모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마약이 활용된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다. 역시 강남에서 벌어진 40대 여성 납치·살인 사건도 마약류 마취제인 케타민 추정 약물이 주사된 흔적이 발견됐다.
마약에 대한 취약성은 온라인 유통 경로를 활용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인천 경찰에 붙잡힌 지난해 마약사범 1004명 가운데 49%(492명)는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거래로 불법 유통시켰다. 이는 대면거래 51% 비중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온라인 유통 비율은 2018년 전체의 22%(145명)에서 4년 사이 27%포인트나 상승했다.
마약 거래가 비대면으로 이뤄지다 보니 10대 사범도 2018년 8명에서 2022년 42명으로 5배 이상 많아졌다. 이영상 인천경찰청장은 “모든 부서가 참여 중인 합동추진단을 꾸려 마약 제조·유통 범죄를 단속하겠다”며 “자수자는 형사 책임을 감면받도록 하고, 신고자에게 신분 비밀 보장과 함께 보상금도 적극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남에서는 텔레그램 마약왕이라 불리는 ‘전세계’(활동명)로부터 마약류를 공급받아 중간 판매책에게 판 일당이 구속됐다.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20대를 포함한 3명은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중간 판매책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엑스터시 100정과 필로폰 10을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소매가로 약 5000만원에 달하는 양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전세계를 만나 그가 국내에 보관 중이던 마약류를 받아 팔기로 공모했다. 이후 특정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몰래 건넸다. 앞서 경찰은 전세계가 텔레그램 대화명을 바꿔가며 계속 국내에 마약류를 밀반입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착수했다.
마약이 일상에 파고드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포착되지만, 실제 마약사범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일각에서 언급된 마약범죄 암수율 추정치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기는 힘들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 마약이 얼마나 만연해졌는지 파악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집중 검거를 통해 더 많은 사범을 잡고, 마약류를 압수하는 것 말고는 단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