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에 경기 얼어붙어… 반도체 수출 회복에 ‘사활’ [심층기획-한국경제 ‘복합위기’]
기사입력 2023-04-15 21:57:21 기사수정 2023-04-15 21:57:20
정부, 석 달째 ‘경기 둔화’ 진단
2023년 누적 무역적자 258억6100만달러 역대 최대 기록한 2022년치 절반 넘어서 유가·환율 흐름 불안 탓 물가도 살얼음 안전자산 선호 영향 자산 양극화 심화 전문가 “적극적 내수부양책 고민할 때”
한국경제는 다면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큰 축인 수출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경기를 부양해야 할 정부의 ‘실탄’은 줄어들고 있다. 진정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되는 물가도 안심하긴 어렵다. 자산시장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돈’이 돌지 않으면서 경기는 점차 얼어붙고 금융시장의 위기국면은 계속된다. 회복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계속되는 수출 부진 탓이 크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며 4월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경기 반등, 중국경제 회복 등이 올해 한국경제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의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은 140억27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6% 감소했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는 258억6100만달러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무역적자(478억달러)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다.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 전체 수출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경제동향에서 1분기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0% 감소하면서 전체 수출액 감소(-12.6%)에 -7.9%포인트만큼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KDI는 “전체 수출액 중 18.9%(2022년 기준)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경기 하락은 수출 위축에 따른 경기 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경제의 한 축인 ‘수출’이 감소하면 정부 세수도 감소한다. 이는 유사시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이 쉽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세수입(누계)은 54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조7000억원 감소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당초 세입예산을 잡았던 것보다 부족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밝혔다. 세수가 예상보다 줄어들면 국채 발행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윤석열정부의 재정정책 기조인 ‘건전재정’과 결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여전히 불안한 물가… 곳곳이 ‘지뢰밭’
물가 상황도 쉽지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년 전보다 4.2% 상승해 전월(4.8%)보다 0.6%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물가 판단 근거로 중요하게 바라보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4.8% 올라 전월과 상승률이 같았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근원물가 상승률도 점차 낮아지겠으나 둔화 속도는 소비자물가보다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와 환율이 불안한 흐름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변수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일 1325.7원에 마감했다. 최근 환율은 꾸준히 1300원대를 넘어서고 있는데 장기간 환율 ‘1300원대’를 기록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등 한국경제에 침체 상황이 왔을 때였다. 유가 역시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기습적 감산 발표 후 가격 상승 국면이 형성되고 있다. 물가 불안이 언제든 가시화할 수 있다.
경기 부진과 물가 불안은 결국 자산시장에도 영향을 끼친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만 몰리면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자산의 양극화’다. 신용등급 ‘A’인 신세계건설은 최근 2년 만기 회사채 800억원어치에 대한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우량물과 비우량물의 갈림이 심해져서 비우량물로 분류되는 경우에는 시장 조달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내수시장의 가장 큰 축인 부동산 시장에서도 양극화가 관측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청약 경쟁률은 5.88대 1이었고 수도권 역시 올해 1분기 4.65대 1의 경쟁률에 그쳤다. 반면 서울의 경우 평균 57대 1의 경쟁률이었다. 지방은 사실상 분양이 멈춘 상태다. 지방 건설의 부진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시장 부실로 연결된다. 지방 건설현장이 멈춰 서면서 이곳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이 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고 이는 연쇄 부실로 이어진다. 올해 2분기 PF 시장 위기설이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아직 경기침체 단언할 때 아냐”
사방이 어려운 형국이지만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하반기 수출상황에 대한 기대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통화에서 “수출이 여름부터 개선의 조짐이 있을 것 같다”며 “여전히 ‘상저하고’일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수출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반도체 경기회복이 변수다. 증권가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가격 하락의 바닥이 다져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당분간 가격 하락세는 지속하겠지만 하락 폭이 축소되는 가운데 거래가 확대되고 구매자들의 주문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출의 20% 내외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성장 여부도 큰 변수로 꼽힌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로 5% 안팎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제로 코로나’ 등의 영향으로 3%에 머물렀다.
정부 대응이 쉽지 않겠지만 내수부양책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는 주문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을 상반기에 많이 배당해놓아서 재정지출을 늘리기 어렵다. 추경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분석도 있다”며 “고금리 상황에서 기업과 개인이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정부가 적극적인 내수부양책을 쓰면서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써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