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열사는 일본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 법률로 나를 처벌하지 말라’. 내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될 때를 대비해 ‘비장애인들의 법률로 나를 다루지 말라’는 변론문을 준비해놨다.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 구조의 식민지 사회에서 해방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 등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관련 투쟁의 1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박경석 상임 공동대표는 이 자리에서 독립 운동가인 안중근 의사를 언급하며 결의를 다졌다.
전장연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장애인권리예산 투쟁 1년: 지하철 행동과 시민-언론의 역할 좌담회’를 열고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하철 행동’의 의미와 언론의 역할 등에 대해 각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좌담회는 정의당 심상정, 류호정, 장혜영 의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우원식 등 국회의원 13명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박 대표는 “전장연이 2021년 12월3일부터 지하철에서 제대로 권리예산 투쟁을 외친 지 1년여가 지났다”며 “차별과 혐오의 화살을 맞고 있는 전장연에 따뜻한 ‘윙크’를 보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2001년 1월 오이도역 참사 후 22년간 투쟁하는 동안 최근이 가장 욕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며 “대한민국 사회가 비용 문제로 장애인 존엄을 갉아먹는 사회는 아닌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지하철만 타면 욕을 먹으니 제대로 우리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장연이 현재 원하는 목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라는 게 박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견적을 다시 떼자는 말”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너무 과도한 예산이 중증 장애인에게 몰려있다고 시설에 보내준다는데 이것이 바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우리가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은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에서 함께 살자는 것”이라며 “우리를 배제한 출근길은 비장애인만을 위한 길일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언제까지 출근길 비장애인들도 끼어 죽을 것 같은데 우리까지 기어들어가 ‘죄송하다’ 해야 하느냐”며 “우리가 먼길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아침 지하철 승강장에서 1명이라도 외칠 수 있다면 오세훈이 얘기한 사회적 강자가 맞다. 우리 힘으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패널로 참석한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출근하는 시민들이 지각하는 일이 반복되자 왜 피해를 주느냐 욕하기 시작했는데, 이 상황에서 정치권이 기름을 부었다”며 “정부가 장애 운동 자체를 적대시하고 처벌하고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마땅히 거쳐야 할 경청과 조율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채 증오를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 투쟁을 두고 일각에선 ‘억지를 부린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동권 투쟁에 나선 장애인을 정부가 비난하는 것처럼 공동체가 누적된 차별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개인에게 그 모든 책임을 부과할 때 당사자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며 “이런 조건에서 합리성과 ‘억지’를 구분하는 합리적 기준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김재왕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서울교통공사가 소를 제기한 후 ‘언론 플레이’로 전장연 입 막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소송을 ‘전략적 봉쇄소송’이라 규정한 김 변호사는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 단체뿐만 아니라 박경석 등 활동가 개인을 피고로 소를 제기했다”며 “이는 청구 금액에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하지 않고 피고 측이 응소하지 않고 방치하면 원고의 주장을 전액 인정하는 셈이 돼 원고 측은 다액의 청구금액을 자의적으로 설정해 피고 측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무엇보다 민사소송으로 제기되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논쟁의 정치적, 공공적 성격을 경제적 권리나 개인적 평판 침해 등 사적인 법률 논쟁으로 변형시킨다”며 “법원은 제소의 배경으로서 법정 외에 있는 공적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교통공사가 제기한 소송에서도 쟁점은 장애인 권리 예산의 필요성이 아니다”라며 “단지 법원은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으로 서울교통공사가 손해를 입었는지 그 손해액이 얼마인지만 판단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결국 소송 자체가 법적 논쟁으로 왜곡돼 본래 논의되고 있던 공적 문제는 방치되고 만다는 비판이다.
박 대표는 마무리 발언에서 “시민을 볼모로 잡는 우리가 죄인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사회가 죄인인가 많은 생각을 한다”며 “안 열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독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말을 못했는데 지금은 좀 해보고 싶다”고 운을 뗐다.
나아가 “안 열사가 마지막 재판에서 일본을 향해 ‘너희들 법률로 나를 처벌하지 마라’는 말을 한다”며 “제가 최근에 32범이 늘었더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얼마 전 잡혀갔다 풀려나긴 했는데 못 피해 나가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다시 기소되면 만약 유죄 판결 받을 때를 생각해 ‘나는 장애인들의 전사다. 비장애인들의 법률로 나를 다루지 말라’는 변론문을 준비해놨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우리를 잡범 말고 전사로 다뤄달라”며 “우리는 비장애인 중심의 식민지 사회 구조 내에서 해방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