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가 외설인가'… 신성한 장소에서 누드 사진 찍는 관광객들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외설스러운 사진찍고 “예술적 의도”
힌두교·전통 무시하다가 추방되기도
‘신들의 섬’ 지상천국 발리 현지인들
“오버투어리즘 그만·문화 존중해야”

“옷을 아예 안 입은 게 아니라, 상의만 탈의한 것이다. 사진을 찍은 장소가 신성한 곳인지는 몰랐다. 발리의 문화적 가치를 침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시민운동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등록된 사진에서 러시아 관광객이 발리 현지인들의 신성한 장소인 ‘뿌띠 까유’에서 옷을 일부만 걸친 채 사진을 찍은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인도네시아 발리 현지인들이 신성한 곳으로 인식하는 장소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 사진을 찍은 러시아 관광객이 13일 이민당국에서 자신의 행위는 고의적인 게 아니라고 강조하며 한 발언이다. 콤파스 등 인도네시아 언론이 전한 소식이다.

 

‘외설인가 예술인가’…힌두교 성지에서 누드 촬영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4월 중순 관광객으로 보이는 러시아 여성이 ‘까유 뿌띠(백목·白木)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 자신의 외설스러운 모습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인도네시아 시민운동가는 이 사진을 접한 뒤, 관광객의 일탈을 비판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까유 뿌띠는 힌두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발리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대상이다. 힌두교의 성지로 인식되는 쁘막산 바바깐 사원이 있는 곳에 자리한 나무다. 논란이 커지자 이민당국은 러시아인을 불러들였다. 그는 “2개월 체류 비자로 발리에 머물고 있다”며 “순전히 예술적 목적에 따라 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보다 수일 전 또다른 러시아 관광객은 아궁(Gunung Agung) 화산에서 하반신을 노출한 사진을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그때도 발리 주민들은 격앙했다. 시바 신을 상징하는 해발 3142m의 신성한 화산에서 종교 모독 행위를 저질렀으니,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국은 이 남성에게 6개월 입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발리 현지문화를 존중하지 않은 관광객의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관광객은 기분을 내고 있지만, 발리 주민들은 ‘오버투어리즘’으로 힘겨워하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은 과잉관광으로 현지인의 생활이 파괴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탈이 반복되면서 관광객의 태도 변화를 주문하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현지매체는 물론 워싱턴포스트, 알자지라 등 여러 외신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러시아의 일탈이 많다는 지적은 특히 눈에 띈다. 외신은 통계까지 제시하며 러시아 관광객의 일탈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발리에는 우크라이나전쟁 등으로 모국을 떠난 러시아 출신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현지 문화를 모독했다는 비판을 받은 러시아 관광객이 13일 덴파사르 이민국에 출두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오버투어리즘은 곤란​…제물을 바치는 ‘신성한 땅’ 배려해야

 

코로나19 방역 조치 완화로 여행·관광의 문이 열리면서 발리의 외국인 입국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34개주 중에 유일하게 힌두교도가 90%가 넘는 지역이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동남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술적 신앙과 전통을 지닌 지역으로 언급할 만큼 특별한 곳이다. 발리는 어원을 산스크리트어 ‘와리(wari)’에 두고 있는데, 이 뜻은 ‘제물 등을 바치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주민들은 신들의 섬에서 신앙심을 갖고 곳곳에서 제물을 바치고 있다.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발리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

 

관광객은 수많은 힌두사원, 미소가 가득한 현지인을 존중하면서 원시의 밀림과 활기찬 해변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 섬 서쪽의 꾸따, 스미냑, 짱구의 해변에서 관광지 분위기를 만끽하거나 좀 덜 번잡한 동쪽의 누사누아와 딴중버누아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정글 속의 우붓과 원숭이사원에서는 이국적인 예술작품과 삶의 현장을 체험할 수도 있다. 웅장한 따나롯과 절벽 위의 울루와뚜 사원에서 인생샷을 찍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일들을 넘어선 러시아 관광객의 행위는 발리 주민들 입장에서는 ‘문화 테러’일 수도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발리 주민들은 관광객의 무례, 불법, 외설스러운 행위 등에 혐오감을 표출하고 있다. 보행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운전을 하고, 해변이나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관광객도 많다. SNS에 혐오스러운 사진을 게재하는 것은 물론, 불법적으로 마사지 등의 영업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발리 주정부는 외국인이 약 12만9000달러(약 1억7000만원) 상당의 금융 잔고를 증명하면 체류비자를 내주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발리 당국은 관광객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법집행을 강화하기로 했다. 일부 비판에 따라 오토바이 운전을 금지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러시아 관광객이 인도네시아 발리 아궁산에서 하의를 탈의한 채 사진을 찍은 모습. 콤파스 캡처

힌두교·현지문화 이해와 존중 필요

 

당국의 권고 혹은 자제 요청 사항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발리 힌두교의 새해 첫날인 ‘녀피’(침묵의 날) 등 힌두교의 명절 의식을 존중해주는 게 좋다. 의식을 방해하지 말고, 실내에 머물러 있는 게 배려다. 신성한 장소나 물건을 모독하는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제물이나 의식을 존중하고, 그 절차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전통의식이 거행될 때 카메라에 담는 것을 자제하면 좋다. 목소리를 높이며 의식거행을 방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리하면 지탄을 면하기 쉽지 않다. 신성한 장소에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 된다. 다른 나라의 관광지에서도 통용되는 조언이겠지만, 소변을 본다든지 관광지를 벗어난 공개적인 장소에서 음주행위를 하는 것도 잘못된 행위다.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서는 안 된다. 개의 머리는 발리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대상이다.

 

분위기 전환과 충전, 이를 넘어서 1개월 혹은 1년 살아보기까지 유행하는 요즘 외지인의 현지문화 이해와 존중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지인은 물론 여행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를 다시 봤다. 발리가 배경인 부문에 특히 주목했다. 주인공은 발리에서 ‘균형적인 삶을’을 추구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또 다른 지역인 이탈리아와 인도에서 각기 ‘달콤한 게으름’을 접하고, ‘내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한 데 이은 깨달음이었다. 

 

인도네시아 발리 남서부에 자리한 따나롯 사원. 발리피디아 제공

“발리에서는 삶의 균형을 배워라”

 

주인공으로 역할한 줄리아 로버츠는 언론인이자 작가였다. 그는 하늘과 땅, 바다가 만나는 발리에서 균형적 삶의 자세를 배우려 노력했다. 아침엔 명상하고, 낮엔 놀고, 하루가 끝나면 명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행복하려면 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언도 아로 새겼다. 그러다가 야자수 아래 좁게 난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발리에서는 가볍고 짧게, 생각 없이 즐겨야 한다고 어느 철부지가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을 정되는 돼 있는 인물이었다. 얼굴도 웃고, 마음도 웃고, 심지어 몸속의 간도 웃을 정도의 삶을 추구하라는 조언도 가슴에 담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성공과 야망의 도시 미국 뉴욕에서 한밤 중 욕실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꺼내든 말은 여운을 남긴다. “버리고 떠날 용기만 있다면,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고, 아픔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면 진실은 자신을 피해갈 수 없다.” 여행의 매순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깨를 부딪친 삶의 스승임을 안다면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독백도 더했다.

 

영화의 초반 장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개 키우는 사람은 그 개를 닮는다고 해.” 그렇다면 발리를 여행하는 사람은 발리를 닮을 수는 없을까. 진정으로 발리를 즐기고 싶고 그간의 일상의 삶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기 위해서 발리를 찾았다면 말이다. 현지인의 마음에 무수한 신들이 존재하는 발리는 물론 주민들의 삶이 여전히 중요한 치앙마이, 루앙프라방 등으로 대체해도 통하는 말이 돼야 한다. 한국의 서울이라면 북촌, 서촌, 망원동 등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오버투어리즘에 거주민이 힘들어하는 지역엔 모두 통해야 하는 말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현지문화에 대한 존중이 다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