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20개’ 의원 규명 관건… 이정근, 스스로 ‘로비스트’ 지칭

민주의원 10명 연루… 檢 수사 속도
‘전대 돈봉투’ 前 대전 구의원 소환

윤관석·이성만 의원도 조사 관측
15년 전 한나라당 전대 사건과 유사
“강래구 돈 이정근 거쳐 윤에 전달”
수수 의원 압색영장에 특정 안해

이정근 1심 판결문에 알선 정황
靑·장관·정계 인사 연결고리 자청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당시 돈봉투를 받은 의원들에 대해 직접 조사 방침을 정하고 조사 방법과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내부적으로 ‘돈봉투 의원’ 10명을 특정한 만큼 수사에 속도를 내겠다는 태세다. 검찰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수사는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이후 15년 만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김영철)는 윤관석, 이성만 의원 등 당시 송영길 당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이 현역 의원 10명과 대의원 등에게 살포한 9400만원의 구체적 공여 과정과 가담자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물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검찰은 이번 주부터 돈봉투 공여에 관계한 당시 송 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이날 대전 동구 구의원을 지낸 강화평(38)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수수인 데다 현역 의원들이 다수 거론되고 있는 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검찰 압수수색 영장 내용 등에 따르면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은 2021년 지인을 통해 3000만원을 마련해 같은 해 4월27일쯤 이를 10개 봉투에 300만원씩 담아 송영길 전 대표의 보좌관 박모씨,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구속기소)을 거쳐 윤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이튿날 이 돈 봉투를 같은 당 의원 10명에게 나눠줬다는 게 검찰의 수사 내용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같은 날 이 전 부총장과 강 회장에게 ‘의원들에게 추가로 나눠줄 현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해 강 회장에게 300만원씩 든 돈 봉투 10개를 더 받아 의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다만 6000만원에 달하는 봉투 20개를 수수한 의원들이 누구인지는 이번 압수수색 영장에 특정하지 않았다. 윤 의원의 요청으로 강 회장이 준비한 돈봉투 개수가 20개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명, 많게는 20명의 민주당 의원이 한꺼번에 수사 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정치학 중심 명문 그랑제콜인 파리정치대학에서 열린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국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유사성’ 특강에서 송 전 대표가 참석한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민주당 내부는 어수선한 분위기다. 특히 송 전 대표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일부 의원들은 자신은 무관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송 전 대표 캠프에 참여했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돈봉투 자체를 본 적도 없고, 캠프 전체회의 같은 자리에서 논의된 적도 없다”며 “저도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당내 일각에선 검찰이 지목한 ‘돈 봉투’의 성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내 매수가 아닌 경선과정에 쓰인 비용을 보전해주는 성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의원은 “정치를 너무 비극적으로 몰고 가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검찰이 근거로 제시하는 ‘이정근 휴대전화 녹음파일’에 대해서도 “윤 의원은 진짜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면서 “결국 강래구랑 이정근이랑 둘이 떠드는 내용이 대부분 아니냐”라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이번 사건을 2008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돈봉투 사건과 비교한다. 2012년 고승덕 전 의원의 폭로로 수사가 시작된 사건이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전당대회 직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1억9000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고 전 의원이 폭로한 3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1억8700만원의 용처는 확인하지 못했다. 재판에 넘겨진 박 전 의장은 2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전당대회에서의 금품 제공행위는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었다’라는 박 전 의장 측의 주장에 대해 “정당의 대표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후보자의 지역구 당원협의회 위원장에 대한 금품제공행위는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용지원의 측면이 일부 있었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들은 당내 경선이라고 하더라도 어떠한 금권의 영향력도 배제한 채 공정한 선거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정당제 민주주의 및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이성만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오른쪽은 윤관석 의원. 연합뉴스

정당법 50조는 당 대표 경선과정에서 특정인의 선출을 위해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거나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런 일을 지시·권유·요구하거나 알선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더 무겁게 처벌한다.

 

한편 이 전 사무부총장은 자신을 ‘로비스트’라 칭하며 정·관계 인사와 사업가를 연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뉴스1

이 전 부총장의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1심 판결문에는 그가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청탁을 받고 대통령비서실장과 행정부처 장관, 정계 인사 등을 알선한 정황이 담겼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이 전 부총장에게 적용된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며 지난 12일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자신을 로비스트로서 정체화했다. 그는 2020년 8월 박씨가 서울 구룡마을 우선수익권 인수와 관련해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알선을 요청하자 “나는 지금도 로비스트야. 내가 해보니까 로비스트로서 기질이 있다”고 답했다는 대목이 판결문에 기재됐다. 이 요청과 함께 박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았지만, 실제 알선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법원 판단은 나오지 않았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입건된 이성만 의원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당시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도 등장한다. 2020년 7월 이 전 부총장은 “이성만 의원에게 내가 100만원을 보냈다”며 “나 오빠(박씨)한테 3000만원 받아서 막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자원공사 걔(강래구)는 그런 걸(정치자금) 좋아하는 애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