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만에 “신속·공정한 수사 요청” ‘정치 탄압’ 주장은 큰 역풍 부를 것 본인도 불체포 특권 행사하지 말아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제 당 공식 회의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신속한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등 입장을 급선회했다. 지난 12일 처음 의혹이 불거진 지 닷새 만이다. 이 대표는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당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어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다”며 “수사 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1년 앞둔 총선에 치명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고, 육성 녹음 파일 등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정치 탄압’ 프레임을 더는 가져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주만 해도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는 등 미온적인 반응이었다. 다른 의원들도 “정치보복”,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의원들은 사석에서는 “수억도 아닌 고작 300만원을 갖고 그러냐”고 주장하는 등 도덕 불감증까지 보였다. 그러나 돈 봉투가 오간 정황이 누가 봐도 구체적이고 명백해지며 이런 주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 대표의 어제 메시지에서도 ‘기획수사’ 등의 내용은 빠졌다. ‘정치적 의도’ 타령만 했다가는 더 큰 역풍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이번 의혹을 두둔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 이상민 의원은 “쓰레기 같은, 시궁창에서만 볼 수 있는, 냄새 나는 고약한 일이 벌어진 데 할 말이 없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도 “당을 해체할 정도의 위기감을 갖고 반성과 결단하는 모습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실기해 당 내부 분열을 막지 못하면 이 대표 리더십 역시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민주당은 검찰수사와 별개로 자체 조사를 통해 연루자들을 징계하는 등 당내 선거 비리와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또 대장동 의혹 등 이 대표가 연루돼 수사 또는 재판 중인 사건과의 이중 잣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천문학적 액수의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민주당은 불체포 특권을 이용해 이 대표의 구속 가능성을 원천 봉쇄했고, 당헌·당규까지 바꾸어 대표직을 유지토록 했다. 이 대표는 이번 입장 표명을 계기로 더는 불체포 특권 뒤에 숨지 말고,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입장을 본인 관련 사건에도 적용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