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축구가 탄생한 지 40년이 됐다. 프로축구는 1983년 ‘슈퍼리그’라는 이름의 세미프로 형식으로 출발했다. 이후 1987년부터 순수 프로팀들만의 대회로 진행, 1996년부터는 구단 완전 지역 연고제를 실시하면서 지역 이름을 앞세운 프로팀들이 등장했다. 2013년부턴 K리그 1부와 2부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재미를 더했다. 이렇게 한국의 프로축구는 40년 동안 발전해 왔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신화 이후 ‘역대급’으로 뜨거운 열기 속 새로운 봄을 맞은 프로축구. 과거부터 틀을 다져온 40년 프로축구 ‘史’에서 무대를 빛낸 인물들이 있다. 바로 초대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전드’들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프로축구 출범 40주년을 기념, 올해 K리그 명예의 전당을 신설했다. 그러면서 초대 헌액자에 오른 영예의 6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그 면면이 곧 ‘역사’다. 올해 선수 부문 헌액자는 40주년의 의미를 담아 역대 최고의 선수들을 각 10년의 세대별로 1명씩 총 4명을 선정했으며, 지도자와 공헌자는 각 1명씩 이름을 올렸다.
◆1세대 ‘아시아 호랑이’ 최순호
1세대 헌액자에는 프로축구 ‘원년 멤버’ 최순호 수원FC 단장이 선정됐다. 최순호는 1980년 실업팀 포항제철축구단에 입단했다. 프로축구가 출범한 1983년부터 1991년까지 포항제철과 럭키금성에서 활약하며 K리그의 태동을 알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그는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한국이 1986년 멕시코서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데 앞장섰다. 그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터뜨린 화끈한 중거리포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꼽힌다. 태극마크를 달고 활약한 만큼 K리그에서도 존재감이 빛났다. 통산 100경기 23골 19도움을 기록, 1984년 K리그 베스트일레븐을 차지했고 1986년 포항제철의 리그 우승을 일궜다.
◆2세대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2세대에는 ‘영원한 리베로(libero)’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이 뽑혔다.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인 리베로는 필요에 따라 공격에 가담하고 본업인 중앙 수비도 집중해야 하는 만능 포지션이다. 프로축구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를 꼽힌 이가 바로 홍명보다. 1992년 포항에서 데뷔한 뒤 첫 시즌부터 리그 우승, 베스트일레븐,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한 홍명보는 K리그 통산 156경기 14골 8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리그컵 우승도 1회 경험했으며. 리그 베스트일레븐에는 5번이나 올랐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울산을 이끌고 사령탑으로 정상에 올라 조광래, 최용수, 김상식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선수와 사령탑으로 모두 K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됐다. 이번 시즌도 울산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홍명보는 선수와 지도자 부문에서 모두 위업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 축구에서 뺴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3세대 ‘그라운드의 여우’ 신태용
3세대에는 신태용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이 선정됐다. 1992년 일화 천마에서 데뷔한 신태용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단번에 이름을 알렸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일화의 핵심 미드필더로 리그 3연패를 이끌었고 1995년에는 리그 MVP까지 차지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한 번의 팀의 리그 3연패를 이뤄낸 신태용은 2004년을 마지막으로 K리그 무대를 떠날 때까지 401경기 99골 68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공격을 조립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부터 골까지 집어 넣는 만능 플레이어였다. 데뷔 초부터 베테랑 같은 플레이로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K리그 최초로 60골-60도움 클럽을 달성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가진 K리그 시즌 베스트일레븐 최다 수상(9회)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다. 선수 은퇴 이후 성남 감독을 비롯,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신태용이 2009년 성남 감독으로서 첫승을 거둔 이후 절친인 전 레슬링 선수 심권호의 ‘레슬링복’을 입고 당시 모기업 음료였던 ‘맥콜’을 온몸에 뿌린 세리머니는 지금도 네티즌들에게 ‘웃긴’ 기억으로 남아있다.
◆4세대 ‘라이언 킹’ 이동국
4세대에는 ‘라이언 킹’ 이동국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선정됐다. 이동국은 1998년 포항에서 데뷔해 안정환, 고종수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며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유럽 무대 도전 후 K리그에 복귀한 이동국은 2008년 성남 일화를 거쳐 2009년 전북 현대에 입단해 만 40세가 넘은 2020시즌까지 선수생활을 하며 무려 8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이동국은 통산 548경기 228골 77도움으로, K리그 역대 최다 득점과 최다 공격포인트, 필드플레이어 중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흑역사를 썼다. 지난 2월 축구협회의 제의로 부회장직을 수행한 이동국은 최근 승부 조작 연루 등의 사유로 징계 중인 축구인들에 대한 협회의 ‘기습’ 사면 논란이 일자 고개를 숙이고 사퇴했다. 승부 조작은 스포츠에서 용서할 수 없는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한 대중의 비판이 이어졌다.
◆지도자 ‘그라운드의 신사’ 김정남 감독
지도자 부문의 초대 헌액자는 김정남 전 감독이 선정됐다. 1960년 국가대표 명수비수 출신인 김정남 감독은 1985년 유공의 지휘봉을 잡아 K리그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김정남 감독은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유공의 감독으로서 1989년 리그 우승과 같은 해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0년 울산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후 2005년에는 울산에 두 번째 우승을 선사했다. 김정남 감독은 감독으로서 K리그 통산 210승168무159패를 기록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 32년 만에 한국을 멕시코 월드컵으로 이끌기도 했다.
◆공헌자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공헌자 부문에는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연맹은 최초를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의 시스템을 강조했던 한국 축구의 선각자 박 회장의 업적을 기려 초대 K리그 명예의 전당 공헌자 부문에 헌액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1973년 포항제철축구단(현 포항 스틸러스) 창단과 1990년 한국 최초 축구전용구장인 포항스틸야드 건립, 1992년 광양축구전용구장 건립과 1994년 전남 드래곤즈 창단, 프로축구 첫 클럽하우스 건립, 유소년 시스템 구축 등 한국축구의 질적, 양적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 해외 언론에서 ‘축구전용구장 하나 없는 축구 후진국’이라고 조롱하자 이를 듣고 분노한 박 회장이 전용구장 건설을 지시한 것이 스틸야드 건립으로 이어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연맹은 5월 중 헌액식을 열고 ‘초대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을 초청해 트로피와 헌액증서를 수여할 예정이다. 이후 관련 구단 홈경기 초청 등 오프라인 행사, 온라인 기념관 헌액 등 이벤트를 통해 헌액자들의 업적을 알리고 기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