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찾아오는 갈망’.
마약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이들에게 그 순간은 대중없이 찾아온다. 투약한 때를 떠올릴 때, 투약하던 때와 유사한 특정 상황이 되면 예고 없이 유혹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다르크’(DARC·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 입소자들은 아침마다 모인다. ‘오늘 기분은 어떻고, 무엇이 힘든지, 자신의 목표는 무엇인지’ 등을 자유롭게 털어놓지만, 규칙은 단 하나다. 마약 이야기만은 하지 말 것. 마약은 평생 참는 것이어서다.
◆시작이 무엇이든 끝은 ‘약쟁이’
◆참지 못하는 마약, 줄지 않는 수요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유통 및 투약 사범 총 검거 인원은 1만2387명으로 최근 5년 새 최대 수치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비대면 거래도 꾸준히 증가해 검거 인원 중 약 4분의 1(3092명)이 인터넷 사범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심사평가원이 파악한 마약 중독 인원은 2018년 429명에서 지난해 721명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김영호 을지대 교수(중독재활복지학)는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마약을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일부 국가·주는 마약을 비범죄화하기 시작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는 인터넷을 통해 마약류 유통도 더 쉬워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젊은 층 마약 중독의 경우 더 오래 지속적으로 마약을 찾을 위험이 높아 우려가 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마약 재범률은 2021년 기준 36.6%인데 연령대가 어릴수록 마약 범죄에 더 오래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임상현 경기 다르크 센터장은 “경기 다르크가 개소한 2019년 3월에는 60대가 2명, 50대가 3명, 40대가 1명, 30대가 1명 있었고 2020년도 비슷했다”면서 “2021년부터 20∼30대 중심으로 바뀌어 현재는 20대가 8명, 30대가 3명으로 서서히 역전됐다”고 말했다.
◆제도·인력으로 ‘중독-치료-재활’ 연결해야
재생산되는 마약 수요 억제는 병원에서의 해독·치료와 지방자치단체·재활센터의 유기적 연결에서 시작되지만 우리나라는 전 단계가 삐걱댄다. 공급 차단 측면에서 유통·거래에 관여하는 마약사범에 대한 철저한 수사 및 처벌과 함께 수요 재생산 차단을 위해 치료와 재활에도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르크 같은 민간 재활 시설에 대한 지원은커녕 보건복지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전국의 마약 중독 전담 치료 병원 21곳 중 대다수도 예산과 의료진 부족으로 제대로 된 운영이 힘든 실정이다. 의료진이 있고, 병상과 치료 시설 등이 구축된 2곳 정도만이 현실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마약사범이 큰 폭으로 늘고, 이에 따른 중독자도 늘고 있지만 지난해 복지부에 책정된 예산은 4억2000만원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이 돈으로 전국 병원 입원비, 치료비를 다 지원한다고 하면 어느 병원이 병동을 만들고 전문 의사를 두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관할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마약류 유통·관리를 다루지 중독자 예방·치료·재활 관련 조항이 없다”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의 설치 및 운영은 복지부 관할인 정신건강 증진 관련 법률에 담겨 있다. 마약, 알코올 등 물질 중독 문제를 관리할 총괄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법무부·식약처 등 관련 부처 합동으로 ‘마약과의 전쟁’ 대책을 발표했으나 이는 ‘말 그대로 공문일 뿐’이라고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꼬집었다. 조 원장은 “그간 지정 기관이 없지도 않았고 병원 입장에서는 지원책도 의사도 없기가 마찬가지”라며 “예산 외에 시설·인력 지원이 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수차례 투약한 중독자 외에도 유통·밀수범까지 모인 교도소 또한 치료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도소에는 중독자가 많고 어차피 수감돼서 전문 치료사를 뽑아 운영하면 외부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며 “중독될수록 치료는 어려워지고 재범은 많아지니까 모든 걸 잃고 나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 역할 못하는 NIMS… 의사들 0.3%만 투약이력 조회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이 최근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과 졸피뎀 등을 의료 외 목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마약류를 처방한 의료 기관과 투약 환자 정보 등이 담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2018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감시·관리 인력이 충분치 않고, 투약 이력을 조회하는 의사가 거의 없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앞서 NIMS에 보고된 자료를 분석해 유아인을 비롯해 마약류 오·남용 환자와 의사 51명을 수사 의뢰했다. NIMS에는 6억건이 넘는 마약류 처방 관련 정보가 쌓여있다. 1년에 1억건가량 정보가 들어온다. 자주 분석할수록 마약류 오·남용 환자와 의사를 빠르게 잡아낼 수 있지만, 제한된 인력 탓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식약처는 경찰에 수사 의뢰하기까지 데이터베이스(DB) 분석과 현장 점검, 전문가 협의체 자문 등을 거친다. 정보를 분석하고, 과다 처방이 의심되는 의료 기관을 찾아 처방이 적절했는지 등을 조사해야 하는데, 마약관리과나 마약유통재활지원 태스크포스(TF) 인원은 각각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식약처가 정기 조사가 아닌 그때그때 가용 인력을 파악해 분석·점검에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사후 조사 전 의료 현장에서 마약류 상습 처방 환자를 걸러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1년간 환자의 마약류 투약 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이 2020년부터 운영되고 있지만 조회 의무가 없다 보니 유명무실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10만5639명의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했고, 정보망을 조회한 의사는 338명(0.32%)에 불과했다.
정부는 최근 마약류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펜타닐 패치와 식욕억제제, 프로포폴, 졸피뎀 등 오·남용 우려가 높은 마약류부터 단계적으로 처방 내역 조회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의료 현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불가능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처럼 NIMS도 의사가 처방 전에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두 시스템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강보험 급여로 처방되는 정보를 취급하는 DUR의 경우 약을 처방할 때 자동으로 확인이 된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NIMS의 경우 의사가 따로 정보망에 들어가 확인하는 구조여서 현장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며 “DUR처럼 진료 환경에서 바로 확인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