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가 어려우면 당사자들이 자기 방어 기회를 놓치고 입을 닫게 됩니다.”
지난 18일 만난 이건범(사진)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23년간 ‘쉬운 우리말 쓰기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대표는 언어를 ‘인권’의 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는 “말은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공적 정보를 다루는 말은 공공언어”라며 “공공언어는 국민의 온갖 권리와 의무, 건강과 생명, 재산권과 행복 추구에 대한 다양한 기회, 그걸 어떻게 분배받을 수 있는 건지 등이 다 표현된다”고 했다. 공공언어가 어려우면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이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쓰이는 언어는 대표적인 공공언어다.
이 대표는 199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살이를 했을 때 쉬운 판결문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그는 2심 재판을 기다리며 혼거방에서 소매치기들과 함께 지냈다. 항소를 제기한 이들 대다수는 1심 판결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변론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같은 것뿐이었으니 자기 방어가 안 됐다”며 “대학 졸업한 나도 판결문에 못 읽는 한자가 많아 대법전과 사전을 찾아보며 항소 이유서나 탄원서를 대신 써줬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당시에 비하면 판결문이 훨씬 쉬워졌지만, 판결문을 쉽게 쓰려는 노력이 여전히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판결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법적 권리를 추구하고 처벌이나 피해 구제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며 “중학교 정도 나온 사람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판결문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