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구리시에서 접수된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일당 소유의 전세주택이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에 900여채가 있어 ‘깡통전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태 파장이 구리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경기 화성시 동탄과 의정부시에서도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속출한 가운데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책은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구리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월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분양대행업자와 공인중개사, 분양대행사 등이 공모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으로 다른 주택을 매입하는 ‘깡통전세’ 수법으로 주택 수백 채를 사들인 것을 확인했다. 피해자들이 계약한 주택의 보증금은 다른 주택의 매매 대금으로 지급돼 현재는 보증금 지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형태의 주택은 분양대행업자 고모씨 명의로 된 게 서울과 인천 등에 540채가 넘고, 나머지 관련 인원을 포함하면 940여채가 되는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경찰은 고씨와 분양대행사 관계자 외에 연루된 부동산중개업자 300여명 중 범행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중개업자 등 20여명을 입건하고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기간이 남은 세입자들이 아직 피해 신고를 미루고 있어 조만간 피해 신고가 속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서 지난 2월 구리경찰서에 “전세 만기가 다 됐는데 전세보증금을 못 받고 있다”는 진정이 다수 접수되면서 경찰이 관련 수사에 나섰다.
고씨 일당은 특히 세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공인중개사를 대거 동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정 수수료율보다 많은 중개비를 받아 뒷돈을 챙긴 공인중개사만 300명이 넘는 걸로 확인됐는데, 경찰은 이 가운데 거래에 적극 가담한 인원을 추려 고씨와 함께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나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피해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고씨 등 사건과 관련된 인원 명의로 된 주택의 계약서와 거래 내역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도 산하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임대차 시세의 30% 수준으로 긴급 지원주택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로부터 피해 사실을 확인받은 피해자이다. 퇴거명령 등으로 주거지원이 필요한 도민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공급되는 GH의 매입임대주택 등에선 최장 2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피해 사례가 늘면서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등의 특별합동점검이 5월까지 이어진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은 별도로 지역별로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올 5월까지 하지만 제한된 권한과 정보들로 인해 사실상 단속과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특사경을 통한 수사와 정부와의 합동점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