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핵 협의 그룹(NCG) 창설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것은 높아지는 북핵 위협 속에 독자 핵무장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한국 내 여론을 잠재우고 이를 기화로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깨고 나가는 사태를 막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결집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이라 한국과의 역내 안보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하는 미국 측의 이해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5일(현지시간) 전화브리핑에서 “워싱턴 선언은 한국 정부와 수개월 동안 논의해 왔다”면서 “잠재적 핵위기에서 한국과 협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언에 담길 NCG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 관련 정보 공유와 핵 공동기획 및 실행을 포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CG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공유 전략을 모델로 한 것이다. 다만 NCG는 미국 전술핵을 공유하는 나토 방식에 더해 한·미 동맹의 기존 체계를 한층 보완·강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토식 핵공유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정치적 부담과 작전 위험을 공유하는 체계다. 유사시 핵을 이용한 반격 가능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핵공유 실무 그룹이 구성되어 있어 매주 모임을 갖고 업무를 수행한다. 다자간 협의 방식에 근거해 정보 교류가 이뤄지지만, 실질적인 협의보다는 미국의 지침을 전달하는 성격이 강하다.
한·미 단 두 나라가 운용하는 NCG는 실질적인 확장억제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나토가 실시하는 스노캣(SNOWCAT) 훈련처럼 핵을 탑재한 직후부터 기지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을 연습하는 훈련 등에 대한 구상도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는 비정기적으로 이뤄졌던 미군 전략폭격기나 핵추진 항공모함·잠수함 등의 한반도 전개 시 한국 공군 전투기나 함정이 함께 움직이며 실시했던 연합훈련이 정례화할 가능성도 있다. 백악관 측이 밝힌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군 전략자산의 통합’과도 맥락이 같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확장억제를 더 두드러지게 보여주고자 전략자산의 전개 빈도도 한층 높아진다. 저위력 전술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인 트리이던트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운용하는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국 방문도 포함된다. 이는 1980년대 초 이후 처음이다. 스텔스 전투기와 전략폭격기, 핵항모에 이어 SSBN까지 한국에 전개한다면 확장억제력을 과시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지금까지 가장 강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나토와 했던 핵공유지만, 이는 협의체라고 봐야 한다”며 “이번에 (NCG에) 상설적인 참모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나토보다도 강력한 확장억제 방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NCG에선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국의 NPT 탈퇴를 포함한 자체 핵무장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한국은 NPT에 따른 자국의 의무에 대한 지속적인 공약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이) NPT 체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을 미국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르게 실질적 능력의 확충을 중시함으로서 그런 우려를 불식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북한의 반발이 변수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한·미 NCG 창설로 인한 중국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백악관 측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비핵화 노력은 중국에게도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중국이 지역 안보 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많은 도발을 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실망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