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없이 간호법이 확정될 경우 17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늘과 11일에는 연가와 단축 진료, 집회 등 집단행동에 나선다. 대학병원 전공의와 교수들이 파업에 합류할 경우 의료 현장이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반대로 대한간호사협회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때 강경 대응에 나설 태세다. 이래저래 국민의 생명과 건강만 볼모로 잡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크다.
간호법은 그동안 단일한 법 체계로 관리해온 의료계 직역 중 간호사를 별도로 떼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을 규정한 게 핵심이다. 고령화와 의사 부족 탓에 심화하는 지역사회의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취지다. 하지만 일부 조항과 문구 해석 차이로 직역 간 갈등이 불붙었다. 의협은 간호법 1조에 간호사의 활동 범위를 ‘지역사회’로 확대하는 내용을 문제 삼아 단독 개원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원급 의료 기관이 아닌 곳에서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논란을 키운다. 요양기관이나 장애인복지시설 등에서는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를 고용하고 있는데 법 시행 후 간호조무사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직역 간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법안을 합의 처리 대신 입법 폭주로 강행 처리한 야당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의료계를 이간질해 내년 총선 때 확실한 표를 얻겠다는 의도를 빼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전향적인 자세로 직역 간 공감대를 이룰 때까지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는 게 순리다. 정부와 여당도 늑장 대처로 일을 꼬이게 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법안이 발의된 지 2년이 되도록 의사 단체 눈치를 보며 허송세월했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설익은 중재안을 내놨지만 외려 갈등을 키웠다.
늦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의료계 설득과 중재에 최선을 다해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의료인은 국민의 건강권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의사든 간호사든 직역 이기주의에 집착해 극한 대립을 이어가다가는 국민의 불신과 비판을 자초할 따름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 파업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의료계는 정부, 국회와 함께 합리적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