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근 국가대표선수촌장 “선수들 본인이 곧 국가… 韓 스포츠 살아있음을 보여줄 것” [세계초대석]

육상 선수 출신 최초 선수촌장 맡아
각 종목 대표 선발전 직접 참석 약속
힘이 된다면 어디든 마다 않고 갈 것

MZ 세대 선수촌 문화도 많이 바뀌어
서로 소통하는 분위기 조성 위해 최선
‘올림픽 전초전’ 항저우 AG 대비 촉박
정신력·팀워크 강화 위해 새벽운동 부활

현재 국가대표 지도자 처우 너무 열악
임금도 5년째 동결… 복지 등 개선 시급

장재근(61)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1980년대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에겐 1982 뉴델리, 1986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 200m 2연패를 달성한 대한민국 육상의 전설일 것이다. 그가 1985년 자카르타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0m에서 세운 20초41의 기록은 2018년 6월 박태건이 20초40으로 0.01초 앞당길 때까지 33년간 한국신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였다. 1990년대부터 기억이 있는 청년층에게 장재근은 방송인, 에어로빅 전도사로 여겨질 법하다.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선수 은퇴한 장재근은 방송을 통해 생활체육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1998년 본업인 육상계로 다시 돌아온 장재근은 2004 아테네 올림픽 단거리 대표팀 코치,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육상대표팀 코치,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 트랙기술위원장 등을 맡아 육상 발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2019년부턴 서울시청 육상팀 감독으로 일하다 정년퇴임했다.



그리고 3월 초 장재근은 육상 선수 출신 최초로 1년 예산이 1200억원일 만큼 큰 조직인 국가대표선수촌장으로 취임했다.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내년엔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선수촌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선수들 본인이 곧 국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며 선수촌 문화를 바꾸기 위해 열심인 장 촌장을 지난 4일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선수촌 집무실에서 만났다.
 

―선수촌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어떻게 지내셨는지.

“선수촌장이란 자리가 이렇게 바쁜 줄 몰랐다. 선수나 코치 시절 봤던 촌장들의 이미지는 산보하듯 선수촌을 돌아다니는 거였다. 직접 해보니 정말 바쁘다. 행사도 많고, 찾아주는 곳도 많다. 그리고 취임 후 ‘각 종목 대표 선발전은 직접 가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5월이 한창 종목별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이 진행 중이다. 집에 가기 좀처럼 힘든 상황이지만, 내가 참석함으로써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생긴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갈 생각이다. 평생 필드에서 살아서 필드에 있는 게 가장 편하고 좋다. 촌장이란 자리가 필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정직인데, 저는 행정도 필드에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수생활을 했던 1980년대와 요즘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 국가대표는 많이 다를 텐데. 선수촌장으로서 가장 강조하는 게 있다면.

“선수촌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 내가 생활할 때만 해도 생활관이 북적거렸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1인1실인 데다 사생활 보호나 인권이 중시되면서 지도자조차 방문을 마음대로 열 수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면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산악 훈련을 2주에 한 번 하고 있는데, 전 종목을 무조건 참가시킨다. 뛰는 종목은 뛰게, 뛰지 않는 종목은 산보라도 하게 한다. 각 종목의 대표선수들이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식사 시간에 휴대폰만 보는 선수들이 많은데, 그런 개인적인 문화보다는 서로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다”
 

장재근 국가대표선수촌장이 지난 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서’가 아닌 ‘네 꿈을 위해, 네가 잘 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며 “국가대표 선수들이 곧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평소 소신을 밝히고 있다.
진천=남정탁 기자

―그간 선수촌 내 각종 사건·사고들이 종종 발생해왔다.

“선수들을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통제하긴 어렵다. 예전엔 선수촌 내에 외부 차량 출입을 절대 금지했다. 이제는 선수들이 타고 있을 경우엔 밤 10시까지는 오픈해 주고 있다. 선수들이 맥주 한 잔을 하더라도 운전하지 말고 택시를 타고 들어오라는 배려다. 개인 보호를 워낙 중시하다 보니 남몰래 생기는 사건·사고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시대에 발맞춰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출도 자유화시켰다. 다만 지도자들을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선수촌이 워낙 벽지에 있다 보니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쉽지 않아서 여가를 즐기라고 영화관이나 노래방 등의 다양한 시설을 준비해뒀다.”

―올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내년 파리 올림픽도 있다. 이에 대한 준비는.

“취임 후 곧바로 아시안게임이 열리다 보니 시간이 정말 없다. 기량이나 기술은 짧은 시간 동안 상승시킬 수 없다. 결국 팀워크나 정신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선에서 정신력 강화를 끌고 가려고 한다. 그 일환으로 새벽운동을 부활시켰다. 사실 새벽 운동이 경기력 향상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정한다. 다만 국가대표로서 마음을 다잡고, 팀 워크를 향상하는 데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6000만명이 되지 않는 인구에 좋은 신체적 DNA를 타고난 것도 아닌데 올림픽에서 10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는 것은 기적이다. 선수들에게도 얘기한다. ‘진천선수촌 같은 훌륭한 시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찾기 힘들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훌륭한 시설에서 운동할 수 있는 만큼 보답해야 한다’라고. 다만 ‘조국을 위해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너 자신을 위해서, 너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해라. 선수들 너희들이 곧 국가다. 너희들을 위해서 하면 그게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항저우 대회가 중요하다. 올림픽 전초전 성격이라 이번 대회에서 어느 정도 해줘야 내년 파리에서도 톱10에 들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내 임기도 파리 올림픽 이후에 끝난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대한민국 스포츠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태릉 선수촌의 향후 활용 방안은.

“지난달에 태릉에 가서 업무 보고를 받았다. 문화재법에 따르면 왕릉에서 봤을 때 건축물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한다. 태릉선수촌도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의 문화유산이기에 다 허물진 않고, 세 군데 정도만 남겨놓고 2027년 전까지 허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태릉선수촌 시설이 정말 아깝다. 내겐 고향과 같은 곳이고,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젊음과 땀이 스며든 공간인데. 스케이트장같이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은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태릉선수촌이 없어진 뒤에 대체 시설을 준비하면 늦기 때문에 지금부터 아직 태릉선수촌에서 일부 기능이 유지될 때 ‘포스트 태릉’을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

―새로 생긴 평창선수촌과의 관계는.

“쉽게 말하면 진천이 큰집이고, 평창이 작은집이다. 지금은 이분화되어 있지만, 결국은 합쳐져야 한다. 현재는 평창은 주로 동계 종목의 훈련 시설로 쓰이고 있는데, 동계 종목에만 국한하지 않으려 한다. 평창이 여름에도 서늘하기 때문에 하계 종목들도 여름엔 평창에서 훈련할 수 있게끔 운영하려고 한다. 태백선수촌은 내년에 예비타당성(예타) 조사가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공사비가 900억원 가까이 된다. 올겨울에 예타 기준이 1000억원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예타 없이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육상 종목 최초의 촌장으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낄 법하다.

“육상은 내 뿌리기 때문에 애착이 크다. 굉장히 도와주고 싶으면서도 때론 밉기도 하다. 평생 육상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종목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다 보니 그렇다. 육상 관련 결재 문서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왜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촌장일 때 한국 육상을 어느 정도 위치까지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책임감과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기도 하다. 육상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에게 ‘여러분들이 잘 해줘야 내가 도와줘도 이런저런 뒷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바람직한 선수촌 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과거 선수촌은 폐쇄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컸다. 그래서 국민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 주문도 많다. 내가 취임하기 전엔 선수촌 탐방을 할 수 있는 하루 최대 인원이 30명이었는데, 100명으로 늘렸다. 국민께 유명한 선수촌 식사도 예약을 하면 100명까지 드실 수 있다. 이번 어린이날에도 2000명 행사를 계획했다. 양궁의 안산이나 김재덕 등 유명 선수들의 사인회도 준비했다. 이런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국가대표 선수들만을 위한 폐쇄된 공간이 아닌 지나가다 얼마든지 들러서 볼 수 있는, 구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선수촌 발전을 위해 제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좋은 선수들을 길러내기 위해선 좋은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가대표 지도자들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 지도자들을 위한 복지도 그렇고, 임금도 5년째 동결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국가대표 지도자들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물론 선수촌의 중심은 선수다. 지도자들은 그림자 역할이다. 다만 지금은 너무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지도자들의 처우나 복지 개선이 필요하다.”

 

◆장재근 진천선수촌장은…

 

●1962년 광주 출생 ●살레시오고 ●성균관대 체육교육과 학·석사, 스포츠심리학 박사 ●1982 뉴델리,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200m 금메달 ●육상 국가대표 단거리 코치 ●육상 국가대표 단거리 감독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 ●대한육상경기연맹 트랙기술위원장 ●화성시청 육상팀 감독 ●서울시청 육상팀 감독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회 부위원장 ●국가대표 선수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