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에서 음료 나눠주는 아르바이트, 일당 15만원”
최근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에서 마약음료를 배포했던 20대 남성 A씨는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구인광고 글을 보고 마약음료를 나눠주는 범행에 가담했다. 그는 단순히 시음회에서 음료를 나눠주는 일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채 마약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10일 수사 당국에 따르면,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과 경찰은 A씨를 비롯해 마약 음료를 나눠준 4명의 피의자가 마약이 들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음료를 배포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지적장애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정말 몰랐다는 게 입증되면 검찰로 송치되지 않고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류 음료를 마시게 하려는 고의는 없었던 것 같다”며 “다른 범죄 연루 가능성이 없는지 보고 있다”고 밝혔다.
마약 소지 및 마약 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퀵 배달 서비스 기사 B씨와 20대 초반 여성 C씨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B씨는 내용물을 모르는 채 상자를 배송하던 중 ‘잠깐 물건을 맡아 달라’는 고객 요청에 따라 상자를 지인의 사무실에 맡겼다. C씨는 이 상자를 받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상자 안에는 반 주먹 분량의 마약류인 케타민이 검은색 절연 테이프로 돌돌 말려 있었다. B씨와 C씨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주장한다.
마약을 직접 운반하거나 보관하면 당국의 수사망에 걸려들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마약 범죄자들은 ‘단순 아르바이트’로 속여 공범을 모집한다. 다른 물품으로 위장한 마약을 배송받는 이른바 ‘물류 피킹’ 아르바이트로 외국에서 마약을 수입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례는 유죄 입증이 쉽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의 사회 경력이나 전과 등에 비춰봤을 때 ‘모를 수가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기소나 구속을 할 수 있는데 보통 사회 초년생이 많고 ‘상선’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읽어봤을 때 ‘진짜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피의자가 어느 정도 정상적인 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백을 받거나 간접 증거로 최대한 기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범행 수법이 대중에게 알려질수록 ‘몰랐다’고 주장해도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민규 변호사(법무법인 안팍)는 “최근 수임했던 사건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많다”며 “‘하얀 가루가 마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면 미필적 인식이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