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일본 반도체 투자 소식이 구체화한다면 그 형태나 규모를 떠나 양국 관계에 있어서는 크나큰 의미를 갖게 된다. 한·미·일 관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안보가 새 국면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다. 한·일 정상회담으로 물꼬를 튼 경제협력을 시작으로 한·일 관계의 발전적 미래가 펼쳐질 여지가 있다.
◆업계선 “한·일 반도체 협력” 목소리
보고서는 양국 간 경쟁우위를 활용해 원천기술을 공동 개발하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반도체 생태계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차세대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가 융합되는 등 기존 반도체가 고도화되거나 현재 실리콘 위주인 원재료가 변경된 반도체를 의미한다.
산업연구원의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차세대 반도체는 제품의 설계, 제조 공정의 변화뿐만 아니라 핵심 소재의 세대교체도 고려해 진행돼야 한다”며 “한국은 반도체 제조기술에서, 일본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경쟁우위를 형성한 만큼 이를 잘 활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크게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 세계 반도체 산업 절반을 장악했던 일본과 2000년대 들어 선두권에 선 우리나라가 손을 맞잡을 경우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용인 클러스터엔 日 기업 유치해야”
다른 한쪽에선 한·일 반도체 동맹을 공고히하려면 우리나라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 첨단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의 일본 반도체 투자는 일본 정부·기업이 출자한 ‘라피더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도요타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주요 기업이 출자해 라피더스를 설립했는데, 삼성전자도 그 무렵 조직 개편을 통해 일본에 산재한 연구개발(R&D) 기능을 한 곳으로 모아 반도체 연구 조직인 디바이스솔루션리서치재팬(DSRJ)을 출범했다. 일본에서는 시스템 반도체나 팹리스가 유리한 만큼 연구조직에 대한 투자 확대가 가장 크게 주목받았다.
라피더스는 2027년 이후 2나노 세대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는데, 차세대 반도체 기술 및 시스템이 없어 외국 기업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이미 라피더스는 미국 IBM, 벨기에 IMEC와 협업하고 있는데, 여기에 삼성전자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하이브리드차가 대세인 일본은 당장 차세대 로직 반도체 수요가 적지만 자동차 전동화가 확산한 뒤인 2030년에는 사활의 문제가 될 것”이라며 “테이터센터의 서버, 자율주행, 5G 기지국 등에서도 차세대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걸고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이유이고, 여기엔 삼성전자가 포함될 수도 있다. 투자 형태와 규모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 일본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양산이 먼 일이 아닐 수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와 미국 반도체 대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 등도 지난해 연달아 일본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TSMC는 일본 소니와 공동 출자해 2024년 12월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6월 반도체 부품 절반을 일본 현지 기업으로부터 구매하는 것 등을 조건으로 공장 건설 비용의 절반인 4760억엔(약 4조7100억원)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