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밥그릇” vs “공공돌봄 확충을”… 논란의 사회서비스원 [이슈 속으로]

‘文정부 유산’ 놓고 전국 곳곳서 논란
민간 대비 임금 2∼3배, 근무 3분의 1
“공급자 만족형 돌봄기관 전락” 비난
노조는 ‘정규직 확대·처우 개선’ 주장
서사원 ‘존폐위기’ 울산·대구 ‘통폐합’
“서둘러 제도 도입한 탓 시행착오 커
개념·방향·체계 등 재정립 모색 필요”

“전체 사회복지시설 중 1.2%(2019년 기준)만이 국공립 직영입니다. 지나친 민간 의존도를 이제는 개선해야 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1년 8월 대표발의자로 단상에 서서 이 같이 강조했다. 전임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인 사회서비스원은 민간 공급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어르신·장애인·영유아 등에 대한 돌봄서비스를 공공(각 시·도)이 직접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기관이다. 지난해 상반된 복지 기조를 내건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고, 상당수 광역단체장의 소속 정당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바뀐 뒤로 각지에서 사회서비스원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최초의 공공돌봄 모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존폐위기 서울시민 청원서 전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서울시의회에서 올해 예산 168억원 중 100억원이 삭감되며 위기 상황으로 내몰렸다. 뉴시스

18일 중앙사회서비스원에 따르면 전국 시·도의 사회서비스원은 2019년 서울·경기·대구·경남에서 조례 제정으로 시범운영에 들어간 이래 지난달 출범한 부산까지 총 15개 시·도에서 운영되고 있다. 충북과 경북을 제외한 모든 시·도에 사회서비스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돌봄근로자들이 속한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거나 광역의회의 ‘정쟁’ 소재가 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서비스원이 존폐 기로에 서거나 다른 기관과 통·폐합되기도 했다.

 

◆최대 규모 서울서 갈등 최고조

 

전국 사회서비스원 중 인력과 조직 측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의 상황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다. 제1노조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와 번번이 충돌하고 있는 데다, 지난해 말엔 시의회에서 올해 예산 168억원 중 100억원이 삭감되며 위기를 맞았다. 

 

서사원을 둘러싼 갈등은 사회서비스원 제도의 태생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공공돌봄’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민간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시 출연기관으로, 공공기관인 서사원에 직접 고용된 요양보호사나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근로자들의 처우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적잖다. 서사원은 최근 보도자료에서 “우리 원 소속 요양보호사 등의 비용 대비 돌봄서비스 제공시간이 민간 기관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 반면, 이들의 임금은 민간에 비해 2~3배 이상”이라며 ‘공급자 만족형’ 돌봄기관이 됐다고 자조했다. 서사원의 자체 감사에서 요양보호사 등 소속 근로자들의 근무행태 관련 비위가 꾸준히 적발된 점도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노조와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요양보호사 등 돌봄근로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나아지려면 서사원처럼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근로자들의 처우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서울시와 시의회가 공공돌봄을 축소하려 한다며 연일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서사원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한 단체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돌봄 정상화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시민 청원서’를 시와 시의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서사원은 시의회의 요구대로 지난달 17일 자체혁신안(자구안)을 발표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자구안엔 △민간과 중복되는 재가장기요양 서비스 종료 △돌봄근로자 정규직 채용 중단 △장애인활동지원사업 긴급돌봄 중심으로 전환 △종합재가센터 권역별 4개로 통·폐합 △국공립어린이집 7개소와 데이케어센터 2개소 등 위·수탁사업 순차적 종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시의회 절대 다수당인 국민의힘은 국공립어린이집 위탁사업 즉각 종료와 임금체계 개선 등을 추가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서사원을 겨냥해 “전임 시장이 노조에 ‘밥그릇’을 챙겨주려 만든 기관 아니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반면, 시의회 민주당은 자구안을 겨냥해 “사실상의 공공돌봄 포기”라고 성토했다.

 

내달로 예정된 시의회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지 않는다면 당장 오는 7월부터 서사원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선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서사원 해산 후 재설계, 또는 폐지설까지 나돈다. 서사원 관계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서사원은 일종의 ‘페이스 메이커’인데, 노조가 서사원을 오버 페이스로 이끌고 있다”며 “서사원이 실패하면 공공돌봄도 축소될 게 자명하지만 노조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국 곳곳서 ‘시끌’… 통·폐합도

 

다른 지역들에서도 사회서비스원이 논란에 휩싸인 경우가 많다. 인천시사회서비스원은 사회복지 관련 서비스 제공과 정책 개발 등 연구 기능 전반을 인천시여성가족재단으로 이관시키는 등 대대적 수술이 예고됐다. 그동안 부실 운영 등으로 존립 자체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다만 폐지 대신 기능 축소로 가닥이 잡혔다. 일부 관리자가 직원들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일삼거나 불합리한 업무 지시나 배제 같은 ‘갑질’ 논란 같은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대구시는 지난해 10월 대구시사회서비스원을 비롯해 평생학습진흥원·여성가족재단·청소년지원재단 등 대구시 4개 기관을 통합한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을 공식 출범했다. 울산시사회서비스원은 올해 1월 시 여성가족개발원과 통·폐합돼 울산시복지가족진흥사회서비스원이 됐다. 시는 “중복되는 행정기능을 한 곳으로 모아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광주광역시 등에서도 사회서비스원이 노조 또는 일부 근로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경북도는 2021년부터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검토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사회서비스원이 광역시에 적합한 모델이라는 판단에서다. 교통 인프라가 약한 경북은 시군 간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에 지역 간 돌봄서비스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도는 부연했다. 도 관계자는 “시·군과 민간의 사회서비스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졸속 도입 탓… 역할 재정립을”

 

전문가들은 사회서비스원 제도의 방향성부터 재정립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보영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는 “사회서비스 공급자의 절대 다수가 민간 사업자라 사회서비스원의 필요성은 인정된다”면서도 “돌봄서비스의 공적 공급을 통한 보완, 서비스 체계 재편 등 구체적인 전략과 계획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성만 보장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한 게 문제”라고 일침을 놨다. 김 교수는 이어 “돌봄서비스의 목적은 노인, 장애인, 아동의 일상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지,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김 교수는 “사회서비스원 제도의 효과성이 입증되지도, 정착이 이뤄지지도 못한 채 정권이 교체됐는데 마치 청산 대상처럼 된 점도 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는 “너무 중증이거나 야간 또는 주말에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가 없다. 단가가 안 맞거나 근로자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민간 기관들이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영역의 돌봄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전임 정부에서) 사회서비스원이 ‘그냥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시작됐는데, 이는 방향성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정확한 기능과 역할을 정립하고 (제도를) 시행했어야 했다. 아직까진 기능과 역할이 모호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예산 규모에 비해 (사회서비스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효과가 너무 미약하다는 점, ‘옥상옥’ 구조가 됐다는 점도 문제”라며 각 시·도 복지재단과 역할이 겹치는 부분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허 교수는 “사회서비스원 직고용 근로자들의 급여가 민간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돌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생긴 것도 심각한 문제”라며 “제도를 급하게 만든 탓에 시행 착오가 큰 것 같다”고 질타했다. 허 교수는 “사회서비스원의 개념부터 방향, 현재의 복지 체계와 어떻게 잘 연결시킬지를 이제부터라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