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새 시대’ 상징… “아픈 역사 수용·해결 의지 보여” [G7 정상회의]

尹, 원폭 피해 동포 첫 만남 의미

역대 대통령과 달리 직접 대면
대통령실 “과거의 문 닫지 않아”
전문가 “말보다 행동 보인 사례”

방일 중 기시다와 위령비 참배
“韓·日 각자 해석 다를 수 있어도
그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의미”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해 원폭 피해자를 만났다. 대통령실은 역대 정권이 외면했던 아픈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새로운 한·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긍정적 제스처라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은 19일 히로시마를 방문해 원폭 피해자 10여명을 만나 직접 위로의 말을 건넨 뒤, 박진 외교부 장관이 동포 만찬을 갖고 이들의 어려움과 요구 사항 등을 경청했다. 대통령실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향후 한·일 정부의 역할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히로시마 한 호텔에서 열린 히로시마 동포 원폭 피해자와의 간담회에 앞서 박남주 한국원폭피해대책특별위 전 위원장의 착석을 도와주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과거사 문제도 계속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미래의 문을 열었지만 과거의 문도 닫지 않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2박3일의 방일 기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공동 참배할 예정이다. 한국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와 한·일 정상의 공동 참배 모두 처음이다. 현직 일본 총리의 참배는 1999년 오부치 게이조 당시 총리 이후 두 번째다. 78년 전 히로시마 원폭으로 14만여명이 희생됐고 한반도 출신자는 7만여명이 피폭돼 약 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도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역사의 굉장히 아픈 부분”이라며 “우리 대통령 가운데 한 번도 그분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대 대통령들은)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라며 “대통령은 이번에 피하지 않고, 있는 역사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들과) 만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자리에 앉은 G7 정상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가자들이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회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히로시마=AP뉴시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원폭 피해자 면담이 한·일 관계에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과거사 문제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인다는 사례”라며 “기시다 총리의 진정성이 전달되면 한·일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통화에서 “(원폭 피해자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소외당한 분들이었다”며 “국가의 보살핌과 지원이라는 것을 좀 더 생각해볼 수 있고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폭 피해에 대한 한·일 양국의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를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국인도 같이 포함된 것이고, 핵이라는 것은 파괴적인 것이고 인류의 살상 무기라는 식의 의미 부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각자의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한·일 정상이 같은 역사적 순간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그 자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