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면 참석하는 각국 정상의 배우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별도로 마련된다. 물론 국빈 방문 같은 양자외교에 비해 G7 등 다자외교 무대는 정상이 배우자와 동행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다.
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고 있는 G7 정상회의의 경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부인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정상들 배우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이끄는 의장 노릇을 하고 있다. ‘배우자’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부인, 그러니까 여성이다. 유코 여사를 비롯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 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부인 악샤타 무르티 여사, 올라프 숄프 독일 총리의 부인 브리타 에른스트 여사가 그들이다.
그런데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의 진행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유독 남성 한 명이 눈에 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남편인 하이코 폰데어라이엔 박사다.
EU는 G7의 정식 구성원은 아니지만 비공식 회원국으로 항상 회의에 참여한다. EU의 집행위원장은 의전 등에서 국가 정상과 동급의 예우를 받는다.
우르줄라와 하이코 폰데어라이엔 부부는 둘 다 의사 출신이다. 1986년 결혼한 이 부부는 금슬이 좋아 슬하에 2남5녀를 뒀다. 7남매를 기르는 워킹맘으로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EU 최고위직에 오르는 과정에선 남편의 외조가 결정적이었다. 그는 2019년 여성으로는 처음 EU 집행위원장에 선출된 뒤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과거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도 출산·육아와 사회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같은 의사인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 밝혔다. “육아는 대부분 남편이 맡는다”며 “더 많은 남성이 내 남편을 본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외조의 달인’을 곁에 둔 덕분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일찌감치 독일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유럽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인 2013∼2019년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서방의 안보정책에 깊이 관여했다. 독일에서 여성이 국방장관을 맡은 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