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시장 두고 펼쳐지는 한·중·일의 동남아 삼국지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내연차시장 절대강자 일본자동차 퇴각
시장 전환에 현대차 등 한국 적극 공략
태국·인니·베트남 자원 & 공급망 강점
현대차·LG엔솔, PTT·스미모토 등 협력

동남아시안(SEA)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 대표팀은 난투극을 방불케 하는 경기 끝에 태국 대표팀에 5 대 2로 승리했다. 레드카드와 옐로카드가 19장 나올 정도로 혈투 끝에 건져올린 32년만의 우승이었다. 축구를 두고 나타나는 동남아 국가들의 라이벌 의식은 강하다. 결승에서 좌절한 태국은 물론, 4강전 패배로 대회 3연패를 이루지 못한 베트남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다. 직전 베트남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박항서 감독이 4강전에 안타까워했던 현지언론에 집중 거론됐을 정도다.

 

동남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이 19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우승 퍼레이드에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자카르타=로이터·연합뉴스

◆ 동남아 강점…니켈 등 자원 풍부·구매시장 성장

 

축구를 두고 펼쳐지는 태국·인도네시아·베트남의 삼국지는 동북아 한국·중국·일본의 삼국지와 유사할 정도다. 최근 동남아 3개국은 축구 삼국지 못지않게, 미래산업인 전기차(EV) 생산 부문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동남아 3개국의 전기차 경쟁 현장에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이 뛰어들어 각축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동남아에서는 그동안 일본 업체들이 내연자동차 시장의 점유율 90%를 자랑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 전환이 진행되면서 부품생산·공급망 재편을 필두로 새로운 경쟁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이 기존 엔진 구동 방식의 연비 효율화 등을 통한 하이브리드에 집중하는 사이에 한·중 양국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적극 뛰어든 덕분이다. 이런 경쟁으로 동남아 자동차 시장은 지각 변동을 겪고 있으며, 일본 자동차업체의 전기차 공백을 드러내고 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지난 2월 16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국제 모터쇼(IIMS)에서 현대차 부스를 찾아 크레타 다이내믹 블랙 에디션을 살펴보고 있다. 자카르타=현대차 인도네시아 판매법인 제공·세계일보 자료사진

전기차 생산 경쟁에 동남아가 부각되는 데에는 배경이 있다. 동남아는 자원이 풍부하고, 구매시장의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생산을 위한 배터리 핵심소재인 니켈이 풍부하다. 인도네시아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경우 2040년엔 전기오토바이, 2050년엔 전기차만 생산한다고 공표한 상태다. 태국은 기존 내연자동차 생산과정에서 보여준 폭넓은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동남아 인구의 평균 연령이 낮은 점도 매력이다. 연령이 낮다는 점은 차후에도 생산과 판매에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될 수 있다. 이런 강점을 인지한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은 내연자동차 생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생산 생태계 전환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 내연차 강자 일본 밀어낸 현대차의 일격

 

동남아 전기차 생산 경쟁을 촉발한 기업은 현대차다. 그간 일본 업체에 열세를 보인 동남아 내연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전기차 부문에서는 앞서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인근 버카시 산업공단에 연간 수십 만대의 전기차 생산을 위한 완성차 공장을 건설했으며, 이곳에서 아이오닉5 등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의 시장 확대에는 배터리 부문의 강자인 LG에너지솔루션이 함께 하고 있다. 자카르타 인근 카라왕 산업단지에 합작으로 배터리셀 생산공장을 세우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현대차의 일격에 위협을 느낀 도요타와 미쓰비시자동차 등 일본 메이커가 뒤늦게 인도네시아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기존 내연자동차 시장의 강점을 활용해 태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핵심 부품 공급망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요청에 따라 태국 석유화학기업 PTT와 일본 무역회사 스미모토가 플라스틱 제조업체 합작사를 차린 상태다.

 

글로벌 자동차 생산시장의 또다른 강자인 중국도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배터리 전문업체에서 출발했다가 사업 분야를 확대해 테슬라와 함께 세계 전기차 판매량을 양분하고 있는 BYD는 태국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세워 2024년부터 연간 15만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BYD는 자체적으로 배터리 생산 기술을 구비하고 있다.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와 만리장성자동차도 태국에 진출했다. 배테리업체 CATL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 기업과 합작으로 2026년까지 생산공장을 설립해 니켈 채굴을 포함한 수직통합 생산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2월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인도네시아 국제 모터쇼(IIMS)의 현대차 부스에 전시된 전기차 아이오닉5의 모습. 자카르타=로이터·연합뉴스

◆ “한국, 전기차 생태계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베트남에서는 전기차 강국의 시장 점유 확대 노력 못지않게 토종업체인 빈패스트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북미 지역에 전기차를 수출해 왔던 빈패스트는 유럽과 동남아에도 자사의 모델을 수출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19일까지 사흘 동안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자동차 모터쇼에 참가한 레티투 투이 빈패스트 최고경영자(CEO)는 “빈패스트에서 생산하고 잇는 전기차 4개 모델을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나릿 터엇사티라삭 태국 투자청장이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태국 투자 설명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태국투자청 제공

동남아의 자동차 시장규모는 연간 400만대로 추정되고 있다. 문기봉 아세안비즈니스센터장은 인도네시아와 태국 시장에 특히 주목했다. 동북아 3개국 자동차기업들의 전기차 생산 개시에 따라 부품과 소재가 풍부한 두 나라의 투자가치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센터장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동북아 3개국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도 지속적인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현지화 된 전기차 개발, 현지 생산, 자동차 할부금융, 배터리 재활용과 같은 전기차 에코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도 전기차 생태계 활성화와 경쟁력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며 “국민은행이 최대주주인 인도네시아 KB부코핀은행이 전기차 생산에서 배터리 재활용까지 전기차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금융지원에 나서고 있는 훌륭한 접근방식”이라고 평가했다.  

 

◆ 태국 투자청장, 설명회 개최하며 한국과 협력 모색

 

각자의 입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동남아와 동북아 국가들은 투자 활성화와 협력 모색 기회도 늘리고 있다. 일례로 태국투자청은 15일부터 18일까지 방한 대표단을 파견했으며,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엔 PTT와 CP 등 기업 관계자가 대거 참여해 한·태 양국 기업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나릿 터엇사티라삭 태국 투자청장은 17일 세계일보와 별도 인터뷰에서 “이번 설명회는 투자청 서울사무소가 2009년 개소한 이래 처음 있는 행사였다”며 “한국전기차협회 관계자 등 양국 기업인 180여명이 비즈니스 미팅과 세미나에 참석하며 열기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일본 무역회사 수미모토와 플라스틱 제조업체 합작사를 차린 태국 석유화학기업 PTT가 운영하는 주유. PTT 제공

나릿 청장은 최근 총선 결과에 태국 투자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태국은 변함없이 전기차 등의 부문에서 경쟁력을 지녔다”고 확인했다. 미·중 갈등 시기에 부각되고 있는 태국의 지리적 강점과 강력한 인프라 시설, 태국의 중립적 외교정책도 평가받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유인으로는 자동차·전자 부문의 생산 공급 경쟁력, 신재생에너지 부문에 대한 관심, 기술적 혁신과 노동 경쟁력 등을 꼽았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은 전기차, 반도체, 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 보여준 기술과 혁신 강국”이라며 “양국 모두에 새로운 경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