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정기 기사·산업기사 실기시험 답안지 ‘무더기 파쇄 사태’는 국가기술자격시험 주관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관리 부실이 주된 요인이다. 국가자격기술시험이 공무원이나 사기업 임용 조건 등으로 쓰이고 있어 향후 결과를 두고 작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 달이 다 돼서야 사태를 파악한 공단은 피해자들에게 재시험 응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사태로 치명상을 입게 된 국가자격시험 공신력의 회복을 위해 공단이 철저한 진상 조사,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고 구조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치러진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의 61개 종목, 609명의 답안지는 관할인 서울서부지사로 옮겨졌다. 서울서부지사에는 관할 지역 18개 시험장의 답안지가 도착했는데, 이 중 17개 시험장의 답안지만 정상적으로 금고에 입고됐다. 나머지 1개인 연서중의 답안지는 금고 옆 창고에 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튿날인 지난달 24일 금고 안의 답안지는 다른 지역의 채점센터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채점센터 관계자는 연서중의 답안지가 누락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단이 사태를 인지한 시점은 시험을 치르고 한 달쯤 뒤인 지난 20일이다. 응시자 대비 답안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채점센터는 서울서부지사에 확인을 요청했다. 공단이 사태 파악에 나선 시점에는 답안지가 있던 창고의 모든 서류가 파쇄된 뒤였다.
공단은 609명 전원에게 재시험 교통비를 지원하고, 시험 시간만큼의 비용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시험을 보지 않은 경우 수수료를 전액 환불하기로 했다.
공단 자체적으로는 책임자 문책과 함께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술자격 시행 프로세스 전반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공단의 자체적인 진상 규명과 별도로 고용노동부는 공단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피해를 입은 609명 중 한 명도 빠짐없이 재응시할 수 있도록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연락해 사과한 후 재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피해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신속히 마련해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를 철저히 조사해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도 책임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