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대화 제안에 북한이 “대화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년숙적’이라던 일본을 향해 북한이 이례적 화답을 내놓은 것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박상길 외무성 부상 명의 담화를 공개하고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에 대한 북한의 강경한 태도, 특히 납치자 문제에 대한 기존의 태도와 대조된다. 1970∼1980년대 발생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일본의 추가 진상규명 요구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태도로 일축해 왔다. 외무성 부상 담화 형식으로 응답한 것 역시 일본 총리의 제안에 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일본이 대화 의지를 먼저 증명하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성명은 “역사를 바꿔볼 용단”이 있는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성명은 “기시다 수상이 ‘전제조건 없는 일·조(일·북) 수뇌회담’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는 데 대해 알고 있지만 실지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며 “‘전제조건 없는 회담’을 말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문제 해결을 운운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북·일 간에 물밑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최근엔 코로나19 국경봉쇄 국면이 변하면서 빠르게 물밑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더구나 재일동포 등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일본으로서는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이어 “경제적 이슈나 미국과의 소통 등 목적이 있어 손을 내밀 가능성도 있다”며 “북한으로선 한국 정부를 따돌리고 주도권까지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일본 외교 소식통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여하면서 대화 국면이 열릴 수 있다는 평가를 해왔다”며 외무성 쪽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물밑접촉이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며 “명분 싸움 측면에서 선전 목적의 담화”로 평가했다. 이 교수는 “납치자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계속 거론되는 것을 받아치면서 자신들은 할 만큼 했다는 해명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선전전으로 보인다”며 “양측이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