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해협 사이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에 대한 인지전을 강화하고 있다. 인지전은 정부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고 민간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등 민심을 교란해 적을 무력화하는 전략으로, 일각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부른다. 다양한 방식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민간이나 군을 동원해 전면적인 충돌을 피하면서도 저강도 도발을 지속하는 회색지대 전술 등이 인지전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내년 1월로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중국은 현재 집권당인 반중(反中)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아닌 친중 성향의 국민당이 집권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인지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의 압박에 대한 대만인들의 반발을 우려해 유화책도 함께 하는 모습도 보인다.
◆분쟁지역 노리고 臺 침범하는 中
차기 총통 선거를 앞둔 현재는 전투기나 폭격기 등을 주로 투입하던 직전과 달리 최첨단 드론 활용이 늘고 있다. 차이 총통 취임 7주년 기념일인 지난달 20일 중국은 TB-001 공격용 드론과 BZK-005 정찰용 드론 등을 투입해 무력시위를 벌인 사례가 그렇다.
중국의 차세대 초음속 정찰 드론인 WZ-8도 투입될 전망이다. WZ-8은 로켓 엔진을 장착해 음속보다 3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초음속 고고도 정찰 드론이다. 약 65초 만에 대만섬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할 수 있어 대만 방공망이 격추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대만 해역 인근에 수천 대의 준설선과 바지선 등을 보내 모래 채취에 나서는 것도 회색지대 전술 중 하나다. 마쭈섬 인근에 모래를 채취하는 중국 준설선이 급증해 생태계 파괴, 통신 케이블 훼손 등의 직접적 피해뿐 아니라 해저 지형마저 바꾸고 있다고 한다. 지역 주민은 준설선 증가를 중국군의 공격 전조로 인식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쑤쯔윈(蘇紫雲) 군사전략소장은 “중국이 전투기를 출격시키면 대만 역시 대응 출격해야 돼 부담되는 것처럼, 비정규 전술인 대만 해역의 모래 채취 등을 통해 대만의 섬을 파괴하고 있다”며 “중국이 회색지대 전술을 통해 대만을 지치게 하는 심리전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中, 대만 내 불안감 키우려 심리전 적극 활용
‘중국군 전투기가 대만 전투기를 격추했다.’ 펠로시 전 의장의 대만 방문을 이유로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인 중국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이런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심리전을 병행했다.
틱톡 등에 동영상을 올리는 것뿐 아니라 관영 매체까지 나서서 가짜뉴스를 사실인 양 앞다퉈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중국 구축함 난징호가 대만 동부 화롄 평화발전소에서 영해의 기준인 12해리(약 22㎞) 이내인 11.78㎞ 떨어진 곳까지 진입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관련 사진과 영상 등을 공개했다. 대만 당국은 발끈하며 사진 속 사물의 비율이 맞지 않고, 합성 흔적도 있어 조작됐다고 대응했다.
이후로도 중국 관영 매체들은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유물이 해외로 이전된다”는 등의 내용을 잇달아 보도했고, 대만 측은 부인했다.
대만 국방부는 펠로시 전 의장이 방문했던 시기 중국이 대만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리려는 시도를 272회 적발했고, 이 중 130건이 군인과 민간인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무력 통일 분위기 조성이 91건, 대만 정부의 권위 공격 51건이었다. 이 외에도 사이버 공격으로 대만 여러 편의점 TV 화면에 ‘전쟁 중매인 펠로시는 대만을 떠나라’는 자막이 뜨는 일이 발생하고, 대만 외교부, 국방부, 타오위안 국제공항 등의 웹사이트가 정상 작동이 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반중 서적을 구매한 대만인에게 직접 전화가 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구매 서적명을 거론하며 “책 내용은 부적절하다. 국민당이 낫다”는 주장을 구매자에게 한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뿐 아니라 원하면 직접 개인을 찾아와 피해를 줄 가능성마저 커진 셈이다. 대만 군사 전문가 치레이는 중국의 대만 통일 계획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대만의 인플루언서 등을 지적한 뒤 “중국은 대만을 겨냥한 인지전을 시작했으며 중국 공산당은 대만에서 많은 협력자를 양성했다”고 지적했다.
◆총통 선거 앞두고 대응에 고심 커지는 臺
대만은 중국이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독립 성향의 집권 민진당 기반을 흔들기 위해 대만을 무력,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전방위 공세를 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차이밍옌(蔡明彦) 국가안전국장은 최근 입법원(국회)에서 “현재 뉴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이용한 폐쇄성 커뮤니티의 가짜뉴스 조작과 운용에 주목하고 있다”며 “중국은 인지전을 통해 총통 선거에서 차기 정부의 노선이 ‘대만 독립 반대’나 ‘외국 세력 개입 반대’ 등을 지지하는 친중 노선으로 변경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가짜뉴스 등의 처벌을 강화하려 했지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에 섣부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도 대만을 압박만 할 경우 반발 심리를 자극해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집권 연장을 돕는 꼴이 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해 유화책을 병행한다.
지난 2월 국민당 샤리옌(夏立言) 부주석에 이어 지난 3월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이 중국을 방문했고, 중국 당국은 이들을 환대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대만 집권당의 분리주의로 양안관계가 손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책임을 민진당에 돌렸다. 이후 푸젠성 샤먼에서 5월 28일 열린 ‘대만해협 양안 학자들의 대면회담’에서 중국 측 학자들은 “대만의 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후보가 승리하면 지금보다 더 극단적인 분리주의 정책을 펼 것이고, 양안(대만과 중국) 관계는 더욱 악화하고, 기존 교류는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만 민심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