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결국 부결돼 폐기됐다. 매년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게 하는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이 국회에서 재의결되려면 국회의원 과반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데 이날 출석의원 289명 중 찬성 178표, 반대 107표, 무효 4표로 부결됐다. 야당의 법안 단독처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회 재의 및 부결이 반복되는 무한 소모전이 이어지니 답답한 노릇이다. 국회의 권위는 날로 실추되고 있다.
간호법은 애초 더불어민주당이 힘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었다. 간호단체와 다른 직군 의료단체 간의 의견차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여야가 작년 5월 간호법의 국회보건복지위 통과 후 거의 10개월 넘게 이해 당사자들과 의견교환을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지난 달 17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시켰고, 지난 달 27일 끝내 국회 본회의에서 일방 통과시켰다. 국회에서 부결돼 이제 간호법은 없었던 일이 된 만큼 여야와 의료계는 서로 ‘윈윈’할 합리적 대안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폐기된 간호법은 애초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직역 모두를 만족시킬 법안은 되지 못했다. 간호사의 지역사회·의료기관 명시, 간호조무사의 학력제한 등이 위헌 소지가 있거니와 직역 간 갈등을 부추기는 내용들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의료체계를 시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모두가 공감하는 만큼 이제 여야 정치권과 합리적인 인사들이 참여하는 중립적 기구를 만들어 합의안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예상했음에도 입법 폭주를 한 이유는 뻔하다. 내년 4월 총선에서 표를 얻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씌우겠다는 의도였으니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방송법 개정안’과 ‘노란 봉투법’을 밀어붙인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나. 이 두 법안까지 민주당이 끝내 강행 처리한다면 불과 1년여 만에 대통령이 네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여권 역시 갈등을 중재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진정성 있게 야당과의 협치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