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도 하나의 공식 언어인데, 제대로 보고 배울 사전이 하나 없어요.”
한국수어사전은 2005년 종이사전으로 처음 편찬돼 2016년 웹사전으로 개통됐다. 하지만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농인들 사이에서는 수어사전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서울의 한 농학교 교사 최모씨는 “기존 수어사전은 시각언어인 수어의 동적 특성을 담지 못해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수어로는 ‘학교에 가다’라는 문장이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데, 기존 사전에는 ‘학교’ 따로 ‘가다’ 따로 등록돼있어 수어 형태가 제한적”이라고 아쉬워했다. 농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9)양은 “수어사전에는 최근 유행어가 없다”며 “유튜브를 보거나 친구들한테 물어보면서 배운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을 감안해 2019년부터 수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해 사전 편찬을 새로 시작했다. 3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은 2019∼20년 시범 편찬 작업을 거쳐 2021년부터 올해 말까지 기존 사전의 문제점을 보완한 새로운 한국수어사전의 1차 편찬 작업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해당 사업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연구 인력과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
◆농인 언어현실 담은 新수어사전
국립국어원은 이러한 지적을 바탕으로 2021년부터 수어를 한국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한국수어→한국어 사전’과 한국어를 수어로 풀어서 설명하는 ‘한국어→한국수어 사전’의 편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단어 모음집처럼 한국어에 수어를 연결만 시킨 기존 사전의 한계를 넘어, 단어가 사용되는 문장 예시와 동의어·반의어 등도 담고 있다. 시각 중심 언어인 수어 특성상 모든 수어 단어는 영상으로 제작된다.
문제는 예산과 연구인력이다. 한국수어사전 사업은 12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국립국어원은 2021∼23년의 1차 편찬 이후인 2024∼26년에는 1차 편찬에서 제작한 단어 수(1000개)보다 3배 많은 3000개 단어를 제작해야 한다. 또한 2027∼29년·2030∼32년 두 번에 걸쳐서는 각각 5000개씩 총 1만개의 단어를 제작할 방침이다. 이처럼 수어 사전을 4차례에 나눠 개통하는 이유는 사용 빈도를 기준으로 당장 수요가 있는 수어 위주로 우선순위를 정해 개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립국어원 수어사전 담당 인력은 2명이다. 근본적으로 연구 인력풀 확충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장기 사업인 만큼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격증 초점”… 수어연구 인력난
현재 수어를 연구하고 교육할 전문 인력 양성과정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부실하다. 문체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제2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 등에 따르면 수어 관련 대학(2)·대학원(5)은 7곳뿐이다. 대부분 수어교원·통역전공으로, 수어를 언어학적으로 분석·연구하는 고등교육기관은 조선대 대학원 ‘수화언어학과’ 한 곳이다.
또한 정부는 한국수어 교육기관을 지정해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어 교육기관은 2017년 8개에서 지난해(10월 기준) 14개로 최근 5년간 6개밖에 늘지 않았다. 더욱이 이곳들은 주로 수어교원 단기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서 전문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서울에 재직 중인 한 수어통역사 이모씨는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수어 통번역 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수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입학한다”며 “정작 통번역 기술을 배우기보단 단기간에 수어를 배워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수업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어·스페인어 등 타 언어 통번역과의 경우, 입학시험부터 해당 언어로 통번역 면접을 진행한다. 입학 이전에 해당 언어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전제하고, 대학·대학원 수업에선 전문적인 통번역 기술을 연마하는 식이다. 이씨는 “수어교육 과정은 알파벳도 모르면서 영어 통번역을 배우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교육제도의 미흡한 지점은 농인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국립국어원의 2020년 ‘한국수어활용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3명(30.4%)은 수어통역사의 수어를 어느 정도만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국수어학회장인 이준우 강남대 교수(사회복지학부)는 한국어 중심적 사고에서 수행됐던 수어 연구·교육의 방향 전환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어와 한국수어 모두에 능통한 농인과 청인 연구원이 한 팀으로 수어의 어휘와 구체적 용례를 쌓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수어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며 관리하는 전문적인 상설 기구가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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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지 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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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농인 수어통역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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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0.0007%의 기회…장애인·비장애인 ‘같이’ 관람하는 ‘가치봄’ 영화 관람해보니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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